나는 건축가 엄마 아이키우기

나는 우리 아이들의 엄마인 동시에 건축가이기도 하다. '~가'라는 말이 붙으니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냥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자격증으로는 '건축사'를 가지고 있는.

건축가라는 직업은 -이 직군을 아는 사람이면 그 실상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사실은 돈도 별로 못벌고 일은 징그럽게 오래, 많이 해야하는 고된 직업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되지 않은 직장생활이 또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그래도 '~사'자가 붙은 직업치고 건축사만큼 사회적 위상도 낮으면서 이토록 돈을 힘들게 버는 직업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건축설계직은 대게 야근은 기본이요 철야는 옵션인 직장생활을 하게 되는데, 일단 회사에 들어가면 연애할 시간 조차 없을 정도다. 그래서 회사에서 짝을 만나지 않는 한, 건축설계직의 사람은 외부에서 결혼할 짝을 만날 확률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나는 회사생활을 시작하기 전인 학교에서 짝을 만났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데 고생을 하지는 않았다. 또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편이 나와 똑 같은 직업을 갖고 있어서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도 유사한 직장생활 패턴-매일매일 야근-을 유지했기에 가정의 평화도 무리없이 지킬 수 있었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칼퇴근을 하는데 다른 한 사람만 매일 야근을 한다면 가정생활이 참 고달플 것이다)

나는 첫애인 준수가 태어난 직후에 건축사 시험에 응시해서 자격증을 땄다. 건축사는 정규 학교과정을 마친 후 일정기간의 실무를 거쳐야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기 때문에 자격증을 따는데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준수가 지금 만으로 열두살이 넘었으니 그 자격증을 딴지도 벌써 12년이 되었다. 그러나 둘째를 낳고 휴직을 장기간 하면서 육아에 전념하느라 오랜 기간 경력이 끊어졌었다. 그러다가 유학후 취직을 하면서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 유학을 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5년만에 시작하는 일이라 일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셋째를 낳으면서는 일을 쉬지 않고 계속하리라고 다짐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건축설계 사무실을 차렸다. 셋째인 준희를 낳기 5일전에 만삭의 내가 구청에 가서 직접 사무소 개설 신고를 한 것이다. 남편과 내가 공동대표이자 직원의 전부인 구멍가게 수준의 작은 회사이다. 준희가 지금 2돌하고 4개월이니 우리사무실도 개소한지 꼭 그만큼 되었다. 즉 준희랑 우리 사무실은 나이가 똑 같다.

2년4개월동안, 어찌저찌하여 사무실은 굴러왔고, 나는 아이를 키우며 일을 했다. 가끔씩 친정엄마 찬스를 쓰긴 했지만(넘 바쁠때 2-3시간 정도), 누구에게 맡기지 않고, 어디에 보내지도 않고 내가 집과 회사에서 직접 키웠다. 젖을 먹는 아기이니 남에게 오래 맡길 수도 없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키우려 했기에 모유수유도 젖병에 넣어서 한 적 없이 늘 직접 먹였다. 

사실 힘든 시간이었다. 체력은 바닥을 쳐서 면역력이 약할 때 일어나는 갖가지 증상들을 겪어야 했다. 결막염은 아마 석달정도 앓았었던 거 같다. 방광염이 신우염이 되어서 생전 먹지 않던 항생제를 거의 한달간 집중 투하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고, 아이도 직접 키우고 있다. 아이의 나이가 3돌을 향해 가면서, 이제는 고지가 가까와 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물론 내가 대표인 사업장에서 일을  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고용된 상황에서는 나처럼 일을 했다간 당장 잘렸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왔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스스로를 건축가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사무실 이름은 IDR architects,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이다. 홈페이지는 www.idrarchitects.com


늦둥이라는 말 아이키우기

첫째인 준수와 막내인 준희의 나이 차이는 열살. 둘째인 준하와도 일곱살이나 터울이 진다. 그래서인지 어린 준희만 데리고 어딜 갔다가, 이 애 위로 오빠 둘이 있고 그 애들은 6학년, 3학년이다 하면 대부분 듣게 되는 소리가 있다. 바로, '늦둥이네요.' 라는 말이다. 그럼 나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하고 웃지만, 속으로는 감출 수 없이 씁쓸한 기분이 되고 만다.

솔직히 나는 준희를 가졌을 때도 그렇고 낳고 나서도, 내가 '늦둥이'를 낳았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해본 적이 없었다. 늦둥이라는 말이 특별히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았다. 워낙 마흔이 훌쩍 넘어서도 애를 낳는 사람이 많은 영국에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런 인생의 '진도'에 대해 워낙 무심한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유독 자주, '늦둥이를 낳으셨네요.'라는 말을 들으니 참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처음엔 내가 이런 말을 들을지 몰랐었기에 놀랐고, 또 '늦둥이'라는 말 때문에 내가 이토록 기분이 상할지 몰랐었기에 두번째로 놀랐다. 늦둥이라는 말 하나 가지고 이런 거부감을 느끼게 되다니.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일이다. 늦둥이라는 말이 원래 이런거였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늦었다'라는 다소 부정적인 평가가 가미되어 있는 말이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직접 듣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일이다. 아마 나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악의 없이 했었을지도 모를 말이다. 그러나 막상 듣는 사람은 전혀 기분 좋지 않은 말이라는 걸 내가 직접 듣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늦둥이'라는 말을 쓴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별 악의없이 한 말이었을 것이라는 건 안다)

늦둥이라는 말을 듣고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아기 낳기에는 늦은 나이인데 애를 낳은 건가'였다. 그러고 나면 거기서 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쓸쓸한 생각을 이어가게 된다. '내가 환갑이면 준희는 몇 살이 되지?', '준희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나는 몇 살이 되어있을까?', '손주랑 잘 놀아주는 활달하고 기운찬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은 낮을지도...나도 큰 애를 서른에나 낳았는데)등등등...'늦었다'라는 말 자체가, 그 한가지 만으로도 뭔가 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라는 자책감이 들게 하는 것이다. 내가 괜스레 생각이 주책스러워진 것일까?

아마 이런 자책감이 드는 제일 큰 이유는 준희를 낳으면서 너무 고생을 했었기 때문인 거 같긴 하다. 내가 첫째 둘째 낳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저질 체력임을 느꼈었기에. 엉엉 울면서 아이를 낳고 나서 무엇보다 준희와 곁에 계신 엄마에게 정말 미안했다. 내가 힘이 약해서 준희도 고생했을 것이고, 이렇게 힘들고 아프게 애를 낳는 나를 바라보신 엄마도 얼마나 맘고생이 심하셨겠는가. 나는 애를 낳기에 늙고 약한 엄마구나, 라는 자격지심때문에 나도 모르게 '늦둥이'라는 말에 자책감이 버무려 느껴지는 모양이다.

여자 준수가 태어났다! 아이키우기

음...어쩌면 우리집에 태어날 셋째는 어차피 이렇게 불릴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셋째가 여자아이라면 더더욱, '여자 준수'거나 '여자 준하'라고 불릴 운명. 그러나 나도 그렇고 남편인 승환도 그렇고 셋째를 낳을 때까지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셋째가 준수나 준하를 닮을거라고는. 그저 단순히 셋째는 아빠인 승환을 닮을까, 아니면 엄마인 나를 닮을까만 생각했었다.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한번도 승환만 닮거나 나만 닮은 아이들이 태어난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준수 준하는 모두 나와 승환을 반씩 섞어 닮았다)

셋째가 태어나자마자 본색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갓난아기때의 준희는 어느 누구보다 순한 아기였다. 생후 한달이 지나고 나서 부터는 밤에 최소 다섯시간씩 잠을 쭉 자기도 할 정도로 성숙한(?) 아기였다. 그렇게 낮밤은 진작부터 가렸으며, 무엇보다 잠에서 깨어나면 울지를 않았다. 잠 깰때마다 무조건 울어재끼던 오빠들과는 정말 달랐다. 잠이 깼는데도 울지 않고 가만가만 놀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어쩌면 이렇게 순할 수가 있을까. 그동안 내가 태교를 잘못해서 애들이 깰 때마다 운 게 아니었어. 이번에도 어김없이 별 태교를 안했는데도 이렇게 안 울잖아? 아, 정말 다행이다.

그런 준희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언제쯤 부터였을까. 돌이 될 무렵,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전부터였을 것이다. 먹고 자는 거 외에 놀기에 대한 욕구를 표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준희의 본색을 발견하고 우리는 모두 이야기했다. 준희는 여자 준수라고.

사실 준희는 외모부터도 준수랑 많이 닮았다. 준수 어릴때 사진을 준희 어릴 때 사진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런데 거기에 성격마저도 정말 비슷하다. 못말리게 극성스러운 게 준수랑 똑 같다. 준하도 극성스러운 면이 있지만 드러낸다기 보다는 은근한 고집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준수랑 준희는 둘 다 당장 해주지 않으면 해 줄때 까지 고집을 부린다. 게다가 잠버릇마저도 비슷하다. 준수는 옛날부터 '가로본능'이라고 불리웠다. 옆사람과 나란히 자기 시작해도 중간에 보면 몸이 직각방향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다. 밤새도록 별 뒤척임 없이 얌전히 자는 준하와는 달리 잠잘 때의 움직임이 요란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준희가 딱 그렇다. 준희를 재우고 거실에 있다가 방에 들어가보면, 준희가 그렇게 가로본능으로 자고 있다. 난 그럼 어디서 자라고? -_-

준희는 내가 상상해왔던 내 딸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어쩌면 난 그냥 막연히 아주 여성스럽게 생긴, 얌전하고 차분한 딸아이를 그리고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그런 여자가  아니면서 말이다. 준희는 여성스럽다기 보다는 코믹하게 생긴, 적극적이고 활달한 여자아이다. 그게 준희다. 그리고 나는 그런 준희를 사랑한다, 말로 다 못할만큼.

지금, 엄마인 내 모습 아이키우기

내가 만약 셋째를 낳아 키우게 된다면, 그동안 못다 정리한 육아일기를 차분히 정리하는 계기로 삼으리라 생각했었다. 뭘 잘 모를때 시작했던 육아일기라 (지금도 뭘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허술한 앞부분도 보충하면서 셋째를 키우는 기쁨도 충실하게 기록하리라고. 하나나 둘을 키울때는 보이지 않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아무래도 새롭게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의 글쓰는 솜씨도-아무래도 그동안 쭉 글을 써 왔으니- 조금은 나아져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또 그렇게 되지 않았다.

셋째를 낳고 나서도 내 본업인 건축설계일을 육아와 병행하다 보니 도저히 글을 쓸 여력이 생기질 않았던 것이다. 첫애때 돌 갓지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직장에 나갔던 것이 후회가 되어서 둘째 낳고는 육아에만 전념을 했었다. 그런데 둘째 키운다고 육아에만 몇년 집중을 하고 나니 또 그후에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너무도 고생스러웠다. 그래서 셋째를 키우면서는 일을 놓지 않고 계속하겠다 결심했었던 게 원인(?)이었다.

돈이 많으면 시간이 없어 여행을 못가고,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것처럼 나는 글감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글을 자주 쓰지 못하고 있다. 또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쓸 거리가 빈약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 아주 간만에 들어와서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며칠전 부끄럽게도 내 블로그 주소를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오래전 내글을 읽고 혼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를 젖먹여 재워놓고 자정이 넘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내일이면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내가  몇년전에 쓴 글을 읽고 그 때를 추억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듯이, 지금의 내 글도 몇년 후에는 내게 그런 기쁨을 주지 않을까 싶어서.

만일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어린 아기를 키우는 엄마라면, 육아일기를 짧게라도 꼭 써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육아일기는 나에게 참으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몇달, 몇년만 지나면 너무나 다 달라져서 기억조차 나지 않게된다. 지금, 엄마인 내 모습도 몇년후의 나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육아일기를 통해 엄마인 내가 아이를 기록하지만 아이를 기록하는 나도 글을 통해 남았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들이 글로도 남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사진으로는 남길 수 없는 것들이다.

나도 앞으로 15분씩이라도 투자해서 짧은 글이라도 남기려고 노력해야겠다. 셋째는 벌써 29개월이다. 꺅!

대통령의 거짓말 건강하게 살아가기

‘정말 그런가’하고 갸우뚱해할지 모르겠지만, 나라마다 ‘거짓말’에 관대한 정도는 확실히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느 나라에서는 거짓말이라고 펄펄 뛸만한 일이, 다른 나라에서는 ‘거짓 해명’이란 말 정도로 은근 슬쩍 넘어가는 것이다. 이쯤 되면 다들 짐작하겠지만, 나는 이제 우리나라의 정치판-그중에서도 일국의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자의 거짓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유학과 취업을 위해서 5년 동안 영국에 산 적이 있었는데, 처음 런던에 도착해서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에 대한 관대함의 사회적 차이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 때 나는 같은 집을 두 군데의 중개업자를 통해 두번 구경을 했는데, 두 중개업자가 부르는 임대료가 다르기에 이건 서로 비밀에 부쳐져야 하는 일인가 보다 생각하고 그냥 더 저렴하게 부르는 중개업자를 통해 계약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두 군데의 중개업자를 통해 집을 두 번 봤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주인은 거짓말을 했다며 엄청 화를 냈다. 나로서는 거짓말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행동까지도 거짓말로 생각하고 화를 낼 만큼 영국은 거짓말을 몹시 싫어하는 나라라는 것을 그 일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또한 나 역시 ‘거짓말’의 정의 혹은 범위를 영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좁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 5년을 사는 동안, 거짓말 근처에 가는 행동조차도 안하려고 노력을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속 편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거짓말을 안 하는 사회에서 사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편안했고, 억울한 일도 적었다. 그런데 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와, 이건 마치 무법천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거리 곳곳에서 불법주차를 하고 있었고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다. 심지어 국민과의 신뢰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정치인인 대통령까지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모른 것들을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이다.

사실 거짓말이란게 무엇인가. 사람 대 사람이 만나 지키지 못할 말, 무언가를 속이는 말을 하는 것만이 거짓말이 아니다. 넓게 보자면 규칙을 어기는 것, 법을 어기는 것, 그것도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을 어겨 놓고 어기지 않은 척, 벌을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다. 법이란 다 같이 불편하지 않게 살려고 정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피해는 법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앞에서 새치기를 하는 긴 줄 뒤에서 끈기 있게 차례를 기다려 본 사람이라면, 그 억울함이 어떤 건지 감이 올 것이다.

거리를 걸으면 1분마다 발견할 수 있을 만큼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불법주차 차량들, 신호위반하고 속도위반하는 차들, 몇 조씩 쌓여 있다는 내지 않은 과태료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 임산부 보호석에 앉아 있는 아저씨들, 줄에서 새치기하는 사람들...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일은 그렇게 법을 지키지 않은 많은 사람들 때문에 굉장히 피곤하고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보기엔 이제 불법주차 정도는 사람들이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된 거 같다. 매일 뉴스에서 쏟아지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숨겨온 비선의 횡포들, 그리고 특정인에 대한 특혜의혹, 뇌물수수등에 대한 소식들이 하나하나가 다 톱뉴스감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다 너무 기가 막힌 것들뿐이라, 대통령의 거짓말쯤은 죄도 아닌 것으로 슬쩍 넘어갈 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 만연한 거짓말은 너무나 큰 해악이다. 세월호참사때 수화물 규정을 제대로 지켰더라면 그런 비극이 일어났겠는가? 배가 출발할 때, 선사는 규정을 지켰다고 거짓말을 했다. 평형수를 채우는 규정을 지켰더라면, 수화물의 무게규정을 정확히 지켰더라면,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운 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해진 규정에서 1g이라도 더 초과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준법정신과, 거짓과 위법에 대한 단호한 대처는 대체 언제쯤에야 우리나라에 안착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거짓말에 대한 엄격한 처벌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상징적인 의미로라도, 대통령의 거짓말에 대해서 이번에 우리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한 번의 거짓말로도 정치생명이 끝장이 나야 제대로 된 청렴한 사회일 텐데, 워낙 거짓과 위법이 횡행한 나라이다보니 대통령의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언론은 ‘거짓 해명’이라는 변명성 이름까지 붙여주고 있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났으면 그걸로 끝, 그것만으로도 사죄를 해야 하고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미국의 워터게이트사건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인선한 변호사가 대통령의 거짓말에 대한 사과는 일언반구 없이, 구구절절 구질구질 변명만 줄줄 늘어놓았다. 또, 탄핵안이 헌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뇌물죄가 성립되어야 한다고 모두들 큰 건더기나 기다리고 있으니, 이 나라 이 사회가 아직 얼마나 기막히게 한심한 것인가? 이러고도 이 사회가 원칙을 지키는 공정한 사회로 금방 거듭날 수 있을까? 세월호침몰과 같은 참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배고픈 자식 앞에서 ‘엄마는 짜장면 안좋아하니 너 다 먹어라’라고 하는 그런 거짓말 빼고, 나머지 다른 거짓말들에 대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모조리 싹 다 엄격하게 대처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서 이 나라 이 사회는 조금도 나아질 수 없다. 작은 거짓말과 위법을 용서하면 그 다음엔 더 큰 거짓말과 위법이 용서를 구하려 들 것이다. 국정원이 개입한 불법선거를 단죄하지 않았기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무능과 거짓말을 단죄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지금 눈덩이처럼 불어난 불법과 거짓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 거짓과 불법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탄핵이 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국민이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국민이 그렇게 이 사회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이번에도 거짓말을 단죄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 이 사회가 공정하고 살기 좋은 곳이 될 거라는 말 역시 또 하나의 거짓말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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