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어머님

나에게는 어머님이 두 분 계시다.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고? 나는 엄마, 즉 친정어머니께는 존댓말은 쓸지언정 어머님이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에게 어머님은 결혼하고 새로이 생긴 어머니, 즉 시어머님이시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 (시)어머님이 한분 더 생겼다. 런던의 새로 얻은 집에 모시고 살게 된 그분은, 바로,

준하다.

준하가 얼마나 엄마인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정말 시어머니가 따로 없을 정도다. 준하는 내가 머리를 묶지 않고 있는 것을 무척 싫어해서, 머리를 감고 나서 말리느라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으면-그다지 긴 머리가 아닌데도-당장 묶으라며 성화다. 어느 정도로 심하게 성화냐면 묶을 때까지 떼를 쓰며 운다. 묶은 모양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다시 묶으라며 화내며 운다. 내 옷도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입으면 벗으라 한다.

하루는 아침 일찍 깨더니, “오늘은 잔디밭에서 떡국 먹을래.” 하는 거다. 내가, “떡국 먹고 싶어? 해 줄까?” 했더니. “떡국이랑 된장국찌게 먹을래.” 한다.
“된장국찌게는 나중에 먹고 먼저 떡국만 먹자.” 하니까
“싫어. 둘 다 먹을래.”
나랑 준하 둘이서 이런 대화를 하고 있으면 승환이 옆에서 시어머니 흉내를 내는 반주를 넣는다. “얘야, 오늘은 떡국이 먹고 싶구나.” “안된다. 둘 다 해라.”

준하가 하도 그렇게 나한테 잔소리를 해대고 명령을 하니까, 승환과 나는 “네~ 어머님.” “알겠습니다, 어머님~.”하고 응수를 하곤 한다. 그럼 준하는 “나 어머님 아니야. 나 준하야.”하고 짜증을 낸다.

사실 내 진짜 어머님, 즉 시어머님은 나한테 설거지도 안 시키는 분이시다. 시댁에 가도 어머님이 일을 거의 다 하셔서 나는 친정 간 딸 마냥 놀다 오곤 했는데-즉 나는 시집살이라고는 전혀 해본적 없는 아주 희귀한 과에 속하는 며느리인데, 이렇게 아들 시집살이를 하게 될 줄이야. 이 이야기를 들으신 우리 친정엄마의 말씀.

“거봐. 세상은 공평한 거란다.(호호)”

by bobab | 2009/11/11 11:27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7)

낯선 땅에서 밥해먹기

아이들과 함께 이렇게 낯선 땅에 떨어졌을 때, 역시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일은 밥을 해 먹는 일이었다. 승환과 나 이렇게 어른만 둘뿐이라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빵으로도 때우고, 볼 일이 급하거나 하면 대충 거르기도 하면서 살 수 있었을지 모르나, 아이들이 있으니 그럴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은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끼니때가 되어 배고프면 뭔가를 반드시 먹어야 하고, 게다가 한국에서 이제껏 자라다 보니 "밥=쌀밥"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라 하루 세 끼니가 빵 종류로는 절대로 대충 때워지지가 않았다.

부실한 기내식으로 허기가 졌는지,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유난히 "밥!"을 외쳐댔다. 그래서 시차적응이 살짝 덜 된 새벽 6시에 옆방 눈치를 보면서 밥을 해서 먹었다.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쌀과 밑반찬으로 차린, 단기방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먹은 피난민의 식사 버전이었지만, 아이들도 나와 남편도 정말 맛있게 먹은 한끼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전기밥솥이 왠일인지 밥 한번 하고 나니 고장이 나버렸다. 손으로 직접 들고 오지 않고 부치는 짐에 넣어 버린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무튼 당장 밥을 해야 하는데 밥솥이 고장 났으니 큰일이었다. 싸가지고 온 코펠로 어설프게 밥을 지어보았지만, 압력솥에 지은 밥을 먹다가 먹으니 이건 아무래도 밥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뜸 안든 밥 먹다가, 물 부어 끓여 죽으로 먹으며 며칠을 버텼다. 마침 나가서 일 볼 것이 많으니 외식도 매일 하면서.

그러나 런던에서 매일 외식이 왠 말인가. 런던의 외식비가 장난이 아닌데. 하여 큰맘 먹고 쿠쿠 압력밥솥을 샀다. 그래서 그 이후로 밥을 해서 한국에서 가져온 밑반찬으로 일주일을 먹었다. 한살림의 우엉조림, 멸치볶음, 김치, 김, 무말림무침, 깻잎김치...한국에서는 한 반찬을 길어야 2-3일 먹었는데, 일주일이 넘도록 같은 반찬을 주니 아이들도 나와 남편도 맛있을 리가 없다.

지저분한 남의 부엌을 꾹 참고, 감자도 채썰어 볶아주고, 미역국도 끓이고, 된장찌개도 끓여 주었다. 한 끼에 단 하나의 새로운 반찬이나 국이 있을 뿐인데도 아이들은 정말 잘 먹었다. 아니, 사실 걸신들린 듯이 열심히 먹었다. 준수와 준하가 된장국물을 그렇게까지 열성적으로 떠먹는 모습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동안 내가 너무나 아이들을 부족함 없게만 키웠구나 반성이 되면서도, 막상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켠이 짠했다.

이제 내 집이 생겨 편안하니 반찬도 다양하게 해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 역시 밥을 제대로 먹는 일은 어디서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

by bobab | 2009/10/29 12:07 | 런던생활기 | 트랙백 | 덧글(17)

런던에서 집구하기-1

런던에서 집을 구해본 경험이 단 한번 뿐인 내가, 이런 제목의 글을 쓴다는 것이 좀 우습다. 그러나 내가 이런 소재로 글을 쓰는 것이 누군가에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글을 쓸 작정을 했다.

내가 쓴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말도 잘 못하고, 경험도 없어서 실수도 많이 하고 고생도 꽤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한 고생, 내가 했던 실수에 대한 이야기만 적어도 이 글을 읽은 사람은 그런 고생과 실수는 덜 할 것이 아닌가.

사실은 제목을 '런던에서 애들 데리고 집구하기'로 하고 싶으나, 그러면 애들 데리고 고생한 부분에 대한 푸념이 많아질까 하여 그냥 집구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쓰기로 했다.

먼저 우리의 경험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리-사실 주로 내가-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인터넷을 통해 집을 알아보아 왔다. 집이란 것이 직접 보지 않고는 결정하기 힘든지라, 미리 정하고 오진 않았지만, 거의 한달 동안 영국의 부동산 사이트를 열심히 보아왔다. (현재 영국에서 집구할 때 가장 많이 참조하는 사이트는 www.findaproperty.com 라고 한다. www.gumtree.com 을 추천하는 사람도 있지만 gumtree에는 사기꾼이 많다고 한다. findaproperty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서 알아보는 것이어서 비교적 안전하다)

그런데 사실 런던이 어떤 곳인지, 어느 동네가 살기 좋은 동네인지, 누군가로부터 살기 좋다고 소개를 받아도 어떤 기준으로 살기 좋은 곳인지 전혀 감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리 인터넷 사이트를 뚫어지게 들여다 본들 별다른 방도가 생기겠는가. 다만 한 달 동안의 영국 부동산 사이트 웹서핑을 통해 런던의 북서부의 지리는 대충 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가 소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런던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집을 구하러 나섰다. 내가 처음 선택한 방법은 부동산사이트를 통해서 찾아 놓은, 관심 있는 매물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에 전화도 미리 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보는 것이었다. 전화로 이야기하는 게 자신이 없어서 선택한, 그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부동산 회사에서 그날 매물을 두 개 보여주었는데, 우리는 그 중 하나에 그날 holding fee(집 소유주와 계약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 대가로 내는 돈. 계약이 성사되면 임대료로 대체되고, 계약이 소유주의 거절에 의해 성사되지 않으면 되돌려 받을 수 있다)를 걸었다. 우리는 그렇게 항상 holding fee를 내야지만 일을 진행할 수 있는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부동산회사를 통해서 집을 알아보니,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우리가 처음 holding fee를 낸 곳은 소유주가 회사여서 서류를 통한 검토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소유주가 개인인 경우 우리의 사정과 조건을 부동산회사의 중개인을 통해 이야기해서 계약이 가능한지를 돈을 내지 않고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계약이 가능하다고 확인이 되면 그제서야 holding fee를 내고 집에 이사하는 날에 잔금을 내는 형식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holding fee를 내야 할 경우에는 그 결과를 되도록 빨리 받는 것이 좋다. 그래야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 다른 곳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방지축 어린애들 둘을 데리고 부동산 사무실 순례를 하는 일이 너무 고되서, 나중에는 안되는 영어로 전화를 먼저 하기 시작했다. 일단 find a property 라는 사이트를 통해서 마음에 드는 임대용 집을 골라 놓고, 그 집을 중개하는 사무실에 전화를 거는 것이다. 전화를 걸어서 그 집이 아직 임대 가능한 상태인지 물어보고, 사이트에 나와 있지 않은 정보 중에서 알고 싶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 집을 보기 위한 약속을 잡는 것이다.

비싼 전화비가 엄청 들어갔지만, 애들 데리고 벌써 나갔을지도 모를 집을 알아보러 한 두군데도 아닌 부동산사무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편보다는 훨씬 나았다. 물론 전화 통화하면서 못 알아듣는 말이 많았지만, 어쨌든 그러면 나는 내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시 물어보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니까. 

너무 성급하게 holding fee를 낸 것 같아 우리는 그런 방법으로 며칠 동안 집을 더 찾아봤다. 그런데 그렇게 미리 웹사이트를 통해서 임대료라던가 위치를 알고 난 후에, 집 구경 약속(viewing arrangement)을 하고 집을 봤지만 직접 가봤을 때 실망스러운 집이 대부분 이었다. 그것은 웹사이트의 정보가 불충분한 점도 있지만 내가 미리 체크할 수도 있었던 부분을 많이 놓쳤기 때문이었다. 지도를 좀 더 유심히 보고, 집 구경 약속을 하기 전에 부동산회사에 미리 물어보았더라면 돈과 시간과 노력이 훨씬 덜 낭비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집의 향이 무엇인지-한국사람들은 남향을 선호하기 때문에 길과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대부분 대지의 북쪽에 집을 앉히는 경향이 있으나 여기는 절대 그렇지 않다- 바닥이 전부 마루로 되어 있는지 아니면 카페트인지, 혹은 방만 카페트로 되어 있는지, 전체 몇층짜리 건물 중에서 몇 층에 있는 집인지, 리프트가 있는지, 창문이 이중유리로 되어 있는지, 발코니가 있는지, 큰 길가에 면해 있는지, 전철역에서 도보로 몇 분정도 떨어져 있는지등까지 미리 확인하고 집을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나는 바닥이 마룻바닥일 것, 아이들이 있으니 되도록 저층-1층이나 2층-일 것, 고층이라면 리프트가 있을 것, 창호가 이중유리로 되어 있을 것, 너무 시끄럽지 않을 것, 창 밖에 나무가 보일 것...정도를 조건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집을 구하고 보니, 우리는 절대적으로 1층일 필요가 있었으며-아이들이 어찌나 뛰는지-, 향도 적어도 북향은 아니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영국은 향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들 하지만, 살림하는 입장에선 절대 그렇지가 않은 것이 해가 들지 않으면 훨씬 춥고 빨래도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바닥도 거실은 마룻바닥인 것이 좋지만 침실은 카펫인 것이 겨울엔 따뜻하고 좋을 것 같고, 아무리 이중유리로 창문이 되어 있어도 외벽이 외기에 면하는 면적이 많으면 난방의 효율성은 떨어진다는 사실도 (건축하는 사람으로선 당연히) 알았어야 했다.

그리고 위치에 대한 부분은 굳이 부동산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지도를 통해서 미리 알 수 있는 것이다. 웹 사이트에는 그 집이 있는 길 이름이 나와 있다. 번지수는 직접 전화해서 미리 집구경 약속을 해야 알려주지만, 어느 길에, 어느 쪽에 면해 있는지 정도는 지도에 이미 나와 있기 때문에 그 집의 위치가 번화가(high street)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큰 길에 면해 있어서 소음이 심한지 이면도로에 있어서 조용한 환경인지 정도는 미리 충분히 알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아무리 다른 조건이 좋아도 큰길가여서 시끄러운 것이 싫었는데, 그 점을 미리 알지 못해서 집구경을 몇 번이나 헛되이 했다.

다음에 다시 집을 구한다면 이번보다는 덜 힘들게, 덜 헛되이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뭐, 언제나 실수는 새롭게 등장하는 법이긴 하지만.

부동산 사무실에서 엄마아빠가 일보기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아이들. 나름 처절하다.

by bobab | 2009/10/17 09:25 | 런던생활기 | 트랙백 | 덧글(6)

오래 떠나있기 위한 짐싸기

어린아이 둘 데리고 휴양림에 가서 텐트치고 자고 밥 해먹으려고 차 트렁크며 좌석 발치까지 꽉 차도록 짐을 싸본 적은 두 번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집을 떠나 새로운 살림을 시작하기 위한 짐을 싸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그게 뭐 그리 어렵겠느냐 닥치면 다 할 수 있는 거지 하고 무조건 대책 없이 쉽게만 생각하는 내 평소의 버릇대로, 이번 역시 별 고민이나 심사숙고 없이 짐을 챙겨 왔다. 그냥 막연하게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정도로.

런던에 와서 첫 한 달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건데 분명 잘 싸온 짐이 있고 잘 못 싸온 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하나의 물건 목록의 유용성을 떠나 큰 방향조차 잘 못 잡았다는 것도.

내가 싸온 짐은 대략 다음과 같다. 블로그 이웃님의 충고 덕에 여름옷은 뺐고, 가을과 늦가을에 입을 옷, 속옷, 내 면 생리대, 머플러와 모자류, 가방, 양말, 칫솔, 치약, 비누, 수건 6장, 행주 3장, 수세미(진짜 우리나라 수세미 열매를 삶아서 말린 것), 오리털 이불 속 2장, 얇은 이불 한 장, 야영용 두툼한 매트 2장, 책 몇권, 아이들 장난감인 나무블록, 전기밥솥, 코펠, 수저, 칼, 계란찜용 뚝배기, 플라스틱 밀폐용기, 물통, 쌀, 된장, 고추장, 소금, 참깨, 들깨, 들기름, 까나리액젓, 새우젓, 멸치, 김, 말린 생강, 미역, 비정제 설탕, 각종 밑반찬-멸치볶음, 깻잎김치, 우엉조림, 양념해서 구운 김-과 김치 2봉지. (그 외에 남편이 싼 노트북과 카메라, 빔 프로젝터, 외장하드등은 나도 잘 모르기 때문에 자세히 쓰지 않겠다) 이것이 전부 이민 가방 네 개와 큰 배낭에 들어간 짐들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그 짐들로 살아보니, 대충 성적표가 나왔다.

나는 짐, 하면 대개는 제일 먼저 옷을 떠올렸는데 생각보다 옷이 많이 필요하지도, 절실하지도 않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외었다. 의외로 가장 요긴했던 것은 당장 먹을 쌀과 밑반찬이었다. 그리고 이불과 야영용 매트. 전기밥솥과 코펠, 수저였다. 그리고 내가 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 것은 쿠션(혹은 베게), 무쇠 프라이팬, 아이들 책, 사전, 디럭스형 유모차, 우산, 우비(영국은 비가 옆에서 온다).

나는 짐을 쌀 때 한국에서는 값이 싸지만 영국에서는 비싼 것은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몇 개 더 넣고, 내가 일상에서 늘 쓰는 물건도 그리 비싸지 않거나 무거우면 뺐다. 영국에 가서 다시 사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건데, 잘 싼 짐이란 생활에 꼭 필요한 아이템을 비록 적은 양이라도 골고루 갖추고 있는 것이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꼭 필요한 물건도 없는 짐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낯선 나라에 떨어지면 처음엔 그 물건을 어디가야 살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국엔 이마트가 없다. 즉, 들어가면 없는 물건 없이 죄 파는 그런 대형 슈퍼마켓은 없는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우리 삶에서 가치 판단의 기준이 결코 경제성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 돈으로 평가하는 가치가 적으나 많으냐보다 얼마나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냐가 훨씬 중요한 가치기준임을 말이다. 나는 값싸고 무거운 물건이라도 내가 매일의 생활에서 요긴하게 사용하는 물건이면 짐에 넣었어야 했고, 가볍고 비싼 물건이라도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뺐었어야 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사기 비싸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 챙겨온 밀폐용기같은 짐들로 가방을 채웠기에 당장 필요한 물건이 없어 며칠 동안 상당한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다시 이렇게 짐을 쌀 기회가 올까 싶지만, 설혹 짐을 싸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번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by bobab | 2009/10/16 09:50 | 런던생활기 | 트랙백 | 덧글(4)

떠남

한국을 떠나는 날. 밤새 짐을 싸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5시에 집을 나섰다. 콜벤을 불러 이민가방 네 개와 큰 배낭 두 개를 싣고, 자는 아이들을 깨워 옷을 입혀 차에 태웠다. 많은 짐을 들고 아직 컴컴한 이른 새벽에 먼 길에 오르는 우리 가족을 도와주고 배웅해주시려, 친정 부모님도 함께 타셨다. 떠오르는 해로 붉게 물든 하늘이 정말 홍시처럼 고운 아침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짐을 부치고 나서, 공항 의자에 앉아 배고파하는 아이들에게 물과 사과를 먹였다. 내 손은 사과가 담긴 봉지를 더듬고 있었지만, 내 머리는 이제 곧 부모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지러워서, 손은 떨리고,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야할 터미널이 모노레일을 타고 건너가야 하는 곳에 있어서, 그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여유도 없었기에, 우리는 곧 출국을 위한 문으로 갔다. 엄마아빠와 인사를 나누면서, 늘 그렇듯이 눈물이 헤픈 나는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우느라고, 엄마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아빠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이렇게 강건하지 못하고 어리숙한 나를, 나름 제 부모라고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어, 맘껏 울지도 못하고 출국수속을 하고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그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생각했다. 내가 지금 진짜로 떠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이주일, 한 달, 혹은 두 달씩 집을 떠나 본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때도 꼭 지금처럼 이렇게 비행기를 탔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일 자체는 그 때와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이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면 이년, 어쩌면 더 오래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그게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떠남이라는 것이 원래 이런 것일까. 떠나는 그 순간에는 정확히 어떤 일인지 모르는 것. 그 순간이 지나,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

하여 나는 아직도 내가 떠나왔다는 것을, 그 떠남이 어떤 것인 줄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 조금씩 느끼게 되리라. 

by bobab | 2009/10/14 18:36 | 사람,사랑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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