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아이

 

솔직히 3살, 6살의 어린 두 사내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안에서 지내다 보면, 혼내고, 화낼 일이 꼭 한 두가지는 생긴다. 나는 되도록 혼을 내지 않고 아이들 하고 싶은 대로 두려는 편이긴 하는데도 말이다. 다 같이 밥 먹는 식탁에 앉아서 밥은 먹지 않고 책만 들여다본다던가, 장난감 자동차들을 밥 그릇 옆에 주르륵 올려놓는다던가, 부엌 싱크대를 물바다로 만들어 놓고도 치우지 않는다던가 하면 나도 승환도 아이들을 혼낸다. 어질러 놓은 것을 다 놀고 나서 치우기로 해놓고는 치우지 않겠다고 하면 큰 소리를 내며 화도 낸다. 또 준수가 준하를 깨물어 아프게 해도 화가 치밀어 올라 주체하기가 힘들다.

참으로 다양한 장난과 사건에 대해서 다채롭게 아이들을 혼을 내게 되지만, 나는 그때마다 절대로 하지 않으려는 말이 있다. 그건 바로, “(무조건) 엄마 말 들어!”라는 말이다.

왜 그게 잘못한 일인지, 혹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고 무조건 말 들으라고 혼내는 것. 나는 그게 참 싫다. 그리고 아이가 말 잘 듣는다고, 말 잘 들어서 착하다고 칭찬하는 것, 그것도 싫다. 누구든 내 아이를 그렇게 혼내지 않았으면 좋겠고, 말 잘 들었다고 칭찬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아이든 어른이든 남이 하는 말을 무조건 듣는 사람보다는 옳은지 그른지 생각해보고 행동하는 사람이 더 낫다고 생각해 왔다. 아무리 윗사람이 하는 말이라도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따르지 않는 것이 옳다고 말이다. 윗사람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것을 우리 사회에서는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지만, 나는 순종이 꼭 좋은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혼을 내는 내게, 내 아이들은 묻는다. “왜?”

그럼 나는 설명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혹은 왜 그러면 안 되는지를.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나 당연한 일에도, 혹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일에도 아이들은 “왜?”라도 묻는다. (그러면 사실 이유가 떳떳치 못한 일도 있음도 알게 된다)

나는 아이들이 무슨 일이든, 무슨 행동이든 그 이유를 먼저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자기 내면에서 나온 판단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또 호감을 표현하는 행동조차도 진심에서 우러나기를, 혹은 스스로 필요를 느껴서 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내 아이들이 무조건 말 잘 듣는 아이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지금껏 그렇게 키워오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내 아이들은 고분고분 하다고, 예의바르다고 칭찬받기는 힘들 것이다. 하기 싫어하는 일 중에 이유 없이 그저 해야 하는 일은 억지로 시키지도 않았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들이 남들에게 칭찬 받는 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가 다른 사람의 칭찬의 연연하기 보다는 내면의 만족과 신념에 기초한 사람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이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곁에 있는 부모인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by bobab | 2010/02/06 12:30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6)

아이가 잠들기 전에

나는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 모두 젖을 물려 재워야 했다. 첫째 아이인 준수는 잠이 푹 들기 전에 젖을 빼면 바로 울만큼 예민하게 젖을 찾는 아이였다. 밤에 잘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젖을 물어야만 잠이 들었다. 둘째 아이인 준하는 준수만큼 잠이 푹 들 때까지 젖을 물고 있어야 하진 않았지만, 늘 충분히 젖을 먹어야 잠을 잤다. 33개월이 지나도록 잘 때가 되면 엄마 젖을 달라고 졸랐고 대게는 젖을 먹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어느새 모두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준수는 두 돌이 되기 좀 전에 젖을 먹지 않고 잠이 들게 되었고, 준하는 34개월이 된 지금 젖을 먹지 않고 잠을 잔다. 첫애 때 언젠가는 아이가 젖을 물지 않고도 잠이 든다는 것을 겪고도 둘째 때는 또 젖을 물려 재우는 일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는데. 어느새 젖을 물려 품에 안고 재우는 일도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아이가 젖을 물지 않고 잠을 자게 된 것이 지나고 보면 약간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다. 품에 밀착하여 재울 때는 하지 못했던 일인 곁에서 잠드는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침대에서 책을 읽고 나서 불을 끄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우리집 bed time story인 ‘토마스 건널’이야기를. 그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지어서 해주고 나면 더 이상 조를 것이 없는 아이들은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진다. 잠이 들었는가 보면 그렇지 않다. 조용히 눈을 깜빡이고 있다. 그렇게 아이가 젖을 물지 않고 잠이 들 때는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 순간, 아이의 그 옆모습을 볼 때면 늘 가슴이 설레인다. 밤하늘이 검정색이 아니라 푸른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푸른색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느낌과 꼭 같다. 아이의 눈빛이 깊은 밤의 푸른색처럼 한없이 투명하고, 신비해 보여서, 그렇게 천천히 깜빡이며 허공을 쳐다보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렇게 말도 없이.

하루 종일 아이들은 뛰어 논다. 말 그대로 몸을 가만히 두지 않고 쉴새 없이 움직이며 논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먹거나 엄마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이야기를 하거나 장난칠 궁리를 한다. 그런 모습에 항상 익숙해있는 나로서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아무말도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어두운 방안에서 바라보는 일이 정말 신비롭게 느껴진다. 사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그렇게 집중해서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그때뿐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한 뼘만큼 내 품에서 떠나갔다. 지금은 한 뼘이지만, 이제 곧 옆 침대로, 옆방으로 멀어지겠지. 이렇게 조용히 저 혼자 잠을 청해 잠이 드는 아이의 모습을 황송하게 바라 볼 수 있는 날도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준수에 이어 준하의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금쪽 같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간식을 먹다가 저 혼자 잠이 든 준하. 요즘 준하는 저렇게 혼자 조용히 잠이 들만큼 많이 자랐다.

by bobab | 2010/01/29 15:22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14)

그림책 읽는 아이-준하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우리 집에선 일주일에 두 번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 영국에 오기 전엔 이 주일에 겨우 한번이었는데 꽤 잦아진 셈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주는 시기를 되도록 늦추고, 줄이려고 늘 애써왔다. 동영상은 더 늦은 나이에 보기 시작해도 집중하기 어렵지 않고, 덜 보아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동영상을 보는 재미에 빠지기 전에 책 읽는 즐거움을 먼저 알게 하고 싶었다. 휘황찬란하게 움직이는 영상대신 가만히 한 장 한 장 넘겨야 하는 그림책에 집중할 줄 알게 하고 싶었다.

준수는 첫애라서 생후 2년 동안은 어른들 보는 텔레비전을 흘끗 보는 일조차 거의 없도록 단단히 단속을 할 수 있었지만, 준하는 형이 있어 그러기가 힘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다큐멘터리나, 올림픽 야구경기 같은 것을 두 돌이 되기 훨씬 전부터 가끔씩이라도 몇 십분씩 보았다. 준수는 텔레비전을 봐도 비록 그것이 소리를 내긴 해도 일방적인 매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양 옆에 있는 사람에게 어쩌구 저쩌구 말을 많이 하면서 본다. 좀 시끄럽긴 해도 나는 그게 준수가 일방적인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증거라고 좋게 생각한다. 그런데 준하는 텔레비전을 보면 아무 말도 없이 무섭게 빠져들었다. 오죽하면 내가 “테돌이”라고 불렀을까. 준하는 텔레비전이 대꾸할 필요가 없는 매체라는 것을 일찍이 간파한 듯 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준하의 텔레비전 시청을 만류했다. 대신 이 주일에 한번, 영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준하는 준수보다 책을 읽기 시작한 시기가 좀 늦었다. 준수보다 많이 읽지도 않았다. 준수가 책에 관심을 보이고 읽기 시작한 시기가 지나도록 준하는 책을 그리 찾지 않았다. 내가 가끔 보여주고 읽어주고는 했지만 책보다 다른 놀이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준하는 좀 천천히 책에 관심을 가지려나 보다 하고 그냥 두었다. 어차피 준수도 책을 읽고, 나도 읽으니 그 모습을 보면 준하도 언젠가는 책을 찾으려니 한 것이다. 다만 그전에 동영상에 익숙해지는 일이나 막자 한 것이었다.

시간이 좀 흐르니 과연 준하도 책을 슬슬 가져오기 시작했다. 혼자 읽지 못하니 엄마인 나에게 가져와 읽어달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준하가 가져오는 책들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두 명의 아이를 키웠을 뿐이지만, 다른 모든 것처럼 준수와 준하는 역시 책을 읽는 패턴도 다르다. 준수는 읽자마자 “또다시!”를 외치며 같은 책을 그 자리에서 대여섯번까지도 다시 읽었지만, 준하는 두 번 연속 읽는 일은 드문 편이다. 한권을 읽고 나면 다른 책을, 그리고 또 다른 책을 본다. 좋아하는 책도 다르다. 꾸러기곰돌이 시리즈는 둘 다 좋아했지만.

아무리 준하가 책을 한자리에서 반복해서 읽지 않아도, 좋아하는 책은 거의 정해져 있어서 결국 그 책들을 여러 번 보게 된다. 나는 준수의 “또다시!”에 워낙 단련이 되어 있어서, 준하처럼 한 두번만 읽고 다른 책으로 눈길을 돌리면 오히려 싱겁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아무리 같은 책을 여러 번 가지고 와도 기꺼이 읽어주게 된다.

사실 준수 덕에 단련이 된 것도 있지만, 나는 아이들 독서에서 반복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반가운 마음으로 그 반복을 즐긴다. 아이들은 엄마가 읽어주는, 수 없이 반복되는 낭독을 통해서 책을 외운다. 책의 이야기를 외우면서 어휘를 늘리고, 표현법을 익힌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익히지 못하는 풍성한 언어적 기교를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된다. 그리고 결국 글자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림책을 읽는 시기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데에 가장 큰 가치가 있다. 글자를 읽지 못하기 때문에 그림에 집중할 수 있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지해 있는 그림에 상상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글자를 읽기 시작하면 그저 듣기만 할 수 있을 때처럼 그림에만 집중하기는 힘들다. 나도 모르게 글자에 눈이 가고 만다. 그뿐인가. 또 관찰력도 키우게 된다. 아이는 책을 읽을 때마다 그림에서 새로운 요소를 발견해낸다. 작은 구석에 숨어 있는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찾아낸다. 대단한 집중력도 생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의 상상. 나는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다. 글자를 늦게 깨우치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 아이가 이렇게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시간을 오래도록 누리게 하고 싶다. 상상이야말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힘이며 동시에 창의력으로 이어지는 힘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잘 찍은 영화도 책보다 재미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은 내 상상력으로 내 머릿속에 펼쳐지는 영상이다. 남의 상상력으로 남의 시선으로 찍은 화면이, 내가 내 입맛대로 엮어 내가 이미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상상보다 더 생생하고 재미날 수 있을까.

준하는 요즘 동화책을 열심히 읽는다. 아니 듣는다. 가끔 제가 외운대로 소리내며 혼자 앉아 읽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엄마에게 열심히 가져와 읽어 달라 한다. 집안일 하느라, 내 책 읽느라 그 순간이 매번 반가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런 준하가 늘 기특하고, 예쁘다. 이렇게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영화를 즐겁게 보아도, 책이 더 재밌다는 것을 알게 된 준하가 고마울 따름이다.

이 장면은 워낙 흔치 않아서 사진으로 담아 놓은 것이다. 준하는 책도 엄마한테만 읽어달라고 한다.-_-;

by bobab | 2010/01/27 12:26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6)

책 읽는 아이-준수

며칠 전 한국에서 엄마가 소포 상자를 보내주셨다.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해둔 한글책들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였다. 준수가 하도 여러 번 읽어 닳다 못해 낱장으로 분해가 되고 있는 why시리즈의 새로운 책들-‘똥, 인체, 화학, 동굴, 뇌, 물’ 편과, 승환이 어릴 적 재밌게 읽었다는 ‘해저 이 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보물섬’, ‘파브르 곤충기’를 비롯해서 준수가 읽으면 좋겠다 싶은 책들이 몇 권 더 들어있었고, 최근에 발간된 육아서적 한권과 이미 읽었지만 요즘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집에 있는 육아서적 두 권, 승환이 좋아하는 소설책 두 권, 그리고 준하를 위한 동화책 두 권까지 들어 있었으니, 얼마나 대단히 멋지고 반가운 상자였는지 모른다.

준수는 그 책 상자를 받은 그날부터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 얼마나 신이 날까. 한국에서 가져온 why책들은 이미 성한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읽고 또 읽었으니, 새로운 책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동안 준수는 읽을 책이 궁할 땐 승환이 읽던 소설책까지 읽었다. ‘어스시의 마법사’라는 환타지 소설을.

혼자 그 어른용 책을 읽다가, 승환과 내가 읽어 주기도 했는데 준수로서는 모르는 단어가 끝도 없이 나와 준수가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면서 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준수는 한 때 그 책을 거의 매일 읽었다. 새로운 책이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오기 전날 배로 부친 책 상자를 두 달 만에 받고서 지금껏 그 대 여섯권의 책을 읽고 또 읽었으니. 또 그 상자를 받기 전엔 책이 단 두어권 뿐이었으니.

영국에 왔으니 기왕이면 영어책을 읽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 준수가 읽을 수 있는 영어책은 준수가 이미 읽고 있는 한글책과는 단어 수가 너무 차이가 난다. 혼자서 읽고 이해할 수도 없다. 내가 거의 매일 조금씩이라도 영어책을 읽어 주고는 있지만 술술 읽던 한글책에 비하면 많이 답답할 것이다. 영어를 공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책을 읽는 즐거움을 계속 느끼면서 모국어의 사용수준을 높여가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모국어를 잘 해야, 외국어도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그리고 매일 매일 준수와 준하가 뭘 하고 놀든 그냥 놔둔다. 정해진 프로그램이란 건 우리 집 아이들의 놀이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때 되면 밥 차려주고, 간식 챙겨주고, 애들이 자동차 놀이 같이 하자면 같이 하고, 책을 읽어달라면 읽어줄 뿐 무엇이든 일부러 하자고 하거나 시키지 않는다. 그냥 아이들이 하고 싶은 놀이를 하며 하루 종일 노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뭘 하며 놀든, 무엇을 좋아하든, 어떤 직업을 갖든 나는 아이의 선택을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타고난 선호와 상관없이 평생습관으로 심어주고 싶은 놀이가 딱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독서”다.

책 읽는 삶.
그것은 준수가 나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준수를 품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준수를 키우면서 책을 더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책 읽는 삶이 내게 얼마나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지,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느끼게 하였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모자란 내 말 솜씨로 다 설명할 수도 없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생각을, 가치관을 자식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몸에 좋은 음식의 맛을 즐기는 습관과 책을 읽는 습관-이  두 가지 습관만큼은 내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책을 많이 접하도록 아이에게 읽어주기도 하고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책을 읽어 왔다. 아이들이 읽을 책을 아이들이 가장 많이 노는 공간의 아이들 눈높이에 두었다. 책을 읽는 습관이 집의 분위기와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말이다. 그런 노력의 덕을 입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준수와 준하는 책 읽는 것을 참 즐긴다.

아이들에게 특정한 책을 읽도록 강요한 적은 없다. 준수가 아직 스스로 책을 주문하지는 못하기에 내가 늘 대신 사긴 하지만 언제나 준수가 좋아하는 것, 좋아할만한 것 위주로 고른다. 만화책만 너무 많이 본다고 제지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책을 즐기며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분야만을 열심히 읽어도 언젠가는 그 분야나 영역이 자연스레 확장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이 평생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그 즐거움으로 인해 인생이 더 풍성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by bobab | 2010/01/24 21:19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10)

우리집 내복의 변천사

나는 아이들 옷을 거의 사지 않는다. 옷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너무 비싸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능하면 주위에서 입던 옷을 물려 입히거나 선물 받은 옷의 범위 안에서 해결하다 보니 아이들 옷 사이즈도 잘 모르고 살게 된다.

그러나 내가 해마다 한번은 아낌없이 애들 옷을 왕창 사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들 내복을 살 때이다. 왕창이라 해봤자 보온내의 2-3벌, 양면내의 2-3벌이지만, 아이들 내복을 사는 일만큼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복은 닳도록 입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닳도록 입으니 물려받을 일도 없고 물론 물려 줄 수도 없지만, 외출복에 비해 비싸지도 않으면서 본전을 뽑는 옷인 것 같다.

나는 주로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해서 한 두 군데서 몰아서 사는데, 한꺼번에 여러 벌을 사면 배송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여느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가장 저렴한 것 같다. 물론 배송되어 온 내복을 처음 보면 그 요란하다 못해 생경한 느낌마저 주는 색깔 때문에 너무 싸구려를 산 것이 아닌가하는 고민이 잠시 생기긴 한다. 하지만 그런 내복도 몇 번 빨고 나면 고상한 색상으로 적당히 퇴색이 되니 고민은 일시적일 뿐이다. 게다가 애들은 뭐를 입혀도 예쁘지 않은가. 나는 준수와 준하의 내복을 패턴은 같되 색상은 다르게 주문하기를 좋아하는데, 그렇게 어울리게 입고 둘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겐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물론 준하가 옷을 훨씬 자주 갈아입어서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만.

집이 아파트가 아니라서 겨울에 내복만 입고 지내는 우리 아이들에게 보온내의는 필수 아이템. 약간 크다 싶게 주문해서 두해는 입힌다. 런던에 올 때도 작년에 입혔던 보온내의를 소중하게 싸들고 왔다. 여름이 덥지 않고, 가을엔 이미 충분히 쌀쌀한 런던에서는 보온내의를 일찍 찾아 입히게 된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그 해의 보온내의가 출시도 되기 전에 말이다.

그렇게 애들이 겨울도 되기 전부터 작년부터 입던 내복을 열심히 입다 보니 무릎에 닳다가 구멍이 났다. 준수 준하는 남자아이들이라 그런지 자동차 놀이, 기차 놀이를 주로 하는데 그게 다 무릎으로 기면서 하는 놀이가 아닌가. 애들이 내복을 구멍이 나도록 입는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유난히 으슬으슬하게 추운 런던의 겨울을 나는데 내복 한 장 달랑 입은 아이들이 너무 추울 것 같았다. 물론 아이들이야 아무리 추워도 양말도 안 신고 살긴 하지만, 나는 바지를 한 겹만 입어도 추워서 두 겹을 껴입는데, 구멍이난 바지라니, 찬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서늘하겠는가.

그래서 한국에 계신 엄마께 부탁드려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 주문한 코오듀로이 천을 비행기로 받아 이렇게 아이들 내복을 수선해 주었다. 새로 사도 될 일이긴 하지만, 무릎만 기우면 나머지-특히 윗도리는- 멀쩡한 옷이니 아까와서 이렇게 올해만 입자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천을 받아서 옷을 기워주자 너무나 좋아라 한다.

“엄마. 나는 이게 좋아요.”
옷이든 헤어스타일이든 까다롭기로 우리집 일등이신 준하가 자기 내복 무릎의 기워진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 말이다. 기우고 보니 준수는 왼쪽 무릎만 닳았고, 준하는 양쪽 무릎과 엉덩이가 닳았다. 엉덩이는 예쁘다고 내가 너무 주물러서 그런가? 암튼 천을 여러 색을 사기는 힘드니 여러 내복에 두루 어울릴 만한 색으로 갈색톤을 골랐는데 준수의 코치대로 내복 색깔의 실로 기웠더니 나름 예쁘다. 또 아무리 흉하진 않다고 해도 기운 옷을 좋다고 입는 아이들도 예쁘고 고맙다. 이렇게 수선한 내복으로 이번 겨울은 거뜬히 날 것이다. (근데 준수 내복을 나중에 준하가 물려 입을 수 있을까, 과연.)

by bobab | 2010/01/22 12:43 | 건강하게 살아가기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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