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해

요즘 승환은 너무너무 바빠서, 매일 새벽 한 두시 혹은 서너시에 퇴근하는데도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한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잦아들고 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했던 일요일. 나는 일찌감치 저녁을 먹인 두 아이를 혼자 데리고 운전을 해서 근처의 중앙공원으로 출동했다.

주말저녁이라, 역시 아빠들과 함께 온 가족이 많았다. 심지어는 아빠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 주말저녁까지 엄마 혼자인 가족은 그 공원엔 없는 것 같았다. 있어도 이렇게 어린 애들 둘을 혼자 데리고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오랫동안 비가 와서 답답함이 고조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집에 주저앉아 있었을 것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집 가까이에 준수 준하를 그저 풀어 놓을 수 있는 널찍한 공원이 있었다면 그 곳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활기차고, 화려하고, 보행자들만 가득한 도시의 공원이 그리웠다.

중앙공원에는 주말에만 틀어주는 움직이는 분수가 있다. 색색의 조명과 함께 다양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분수들은 오늘 보니 더욱 근사했다. 준수와 준하와 나는 분수를 보며 연방 감탄사를 내질렀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보석알갱이들이 공중에 흩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불꽃놀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원하고, 화려하고, 경쾌했다. 용감하게 뛰쳐나온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분수의 물이 흘러가는 개울에 아이들이 물장난을 하려고 들어가 있었다. 준수도 옷을 벗고 들어가고 싶어 했다. 결국 준수, 준하 두 아이는 알몸이 된 채로 내 양손을 잡고 그 개울을 휘젓고 다녔다. 한참을 그렇게 논 후, 옷을 다시 입히고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을 때 9시반쯤 되어 승환이 합류했다.

승환이 준수와 기쁜 재회의 퍼포먼스를 마무리하고는 나에게 묻는다.
“저녁은 어떻게 했어?”
“카레해서 먹였어.”
“대단해, 보림.”
자신의 애 둘을 밥해서 먹인 일을 가지고, 대단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남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승환은 준수를 키울 적에 해봐서 그게 어떤 일인 줄 안다. 하나도 힘들었는데, 둘을 그렇게 하다니, 대단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더 대단한 건 승환일 것이다. 그 일을 대단하다고 생각해주게 된 그가 대단하다. 고맙다.

어제도 저녁에 나들이를 했던 터라, 오늘 저녁은 밥 먹고 그냥 집에 있었다. 준수는 은서, 진서네를 따라 놀이터에 가자고 뒤늦게 조른다. 은서, 진서네 이미 집에 돌아왔다고 설득하느라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묻는다.
“애들 씻겼어?”
“어. 어떻게 알았어?”
“씻긴다고 했잖아, 아까. 네명을 씻긴거야?(요즘 은서네는 은서 사촌아이도 한명 같이 산다)”
“그럼!”
“대단해, 자기. 네명씩이나. 네명이니까 나보다 두배로 더 대단해.”
(그러나 사실 두배가 아니다. 세배쯤 된다. 그녀는 참 대단하다)
“알아주는 사람 있으니 고맙네!”

내 주변엔 참 대단한 사람이 많다. 대단함이란, 이렇게 가까이 있다.

by bobab | 2008/07/29 00:09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13)

이제 갓 아기를 낳은 내 친구에게

친구야! 무사히 아기를 낳은 거, 진심으로 축하해.
비록 너와 내가 간절히 원했던 대로 자연분만을 하진 못했지만, 아기도 너도 건강하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니? 지금은 그거면 충분하고도 또 충분한 거지. 지금은 지나간 일에 마음 쓰지 말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자. 당장 네 앞에는 모유수유라는 험난한 산이 기다리고 있거든. ^^

아기의 얼굴을 본 감격과 수만가지 감상을 제대로 느끼고 펼쳐보기도 전에 육아라는 난코스에 너는 이미 접어들었단다. 목욕시키고 기저귀 바꿔 채우는 일은 당장은 누군가가 도와주고 알려 줄 거야. 하지만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일은 이 세상 오직 너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지. 수술부위의 통증과 싸워가며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일은 곁에서 보는 사람에겐 엄마와 아기가 연출하는 아름다운 풍경이겠지만 직접 겪는 너에겐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싸움이 될 거야. 아직은 어색한 자세로 젖을 먹이느라 팔과 손목은 저릿저릿해지고 허리는 쑤시거나 뻐근해지겠지. 젖꼭지는 아기가 빠는 힘에 시달려 허물이 벗겨지고 갈라져 피가 날지도 몰라. 어쩜 젖이 충분치 않다고 아기가 먹다가 울며 보챌 수도 있지. 애가 잘 빨지 못할 수도 있고, 네 젖이 모자를 수도 있고, 넘칠 수도 있고... 그야말로 난관은 가지가지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유수유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과 그 고통은 감내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

나는 네가 그 모든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길 바란다. 피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이겨나가기를. 애가 못 빤다고 유축기로 짜서 젖병에 담아 먹이지 말 것이며, 잠을 푹 자고 싶다고 네 곁에서 아기를 떼어 놓지 말 것이며, 하루 단 한번뿐이라 할지라도 분유를 먹이지 말 것이며, 산후조리 한다고 애를 손에서 놓고 쉬지 말고 힘들더라도 아기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쉬지 말고 젖을 먹이는 연습을 계속하기를-그 과정을 통해서 젖양은 늘어날 테니까. 그리고 산후조리는 무조건 몸을 안 쓰는 것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야. 젖을 제대로 먹여야 네 자궁이 제대로 회복되는 걸.

아기가 태어난 직후의 그 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책에서 읽었니? 그 몇 십분이 탄생에 의해 엄마와 분리된 아기의 정서를 안정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라면, 아기가 태어난 후의 일주일, 혹은 한달은 모유수유의 성공에 있어 또 그렇게 중요한 시기란다. 특히 첫 일주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구나. 첫 일주일을 잘 보내면 그 다음은 훨씬 수월해지거든. 반면 첫 일주일 동안 단 한 두 번이라도 아기에게 젖병을 물린다면 그 순간엔 뭔가 쉽게 진행되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로 인해 모든 일은 훨씬 어려워 질 테니 조심해야해.

젖몸살도 오겠지. 하지만 네 몸이 네 아기에게 맞는 젖의 양을 알아차리도록 하는 과정이니 아프더라도 견뎌 내야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기에게 충분히 먹일 수 있을 만큼의 젖을 몸에서 만들어 내는 엄마들은 다 겪는 과정이란다. 그러니 또한 감사한 일이지.

젖을 먹이는 것이 처음엔 즐거움이긴 커녕 고통과 외로움이 더 크다는 것을,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거야.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그 낯선 느낌은 허탈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지. 네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동안엔 주변 사람들은 네가 아기와 함께 있으니 외롭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자기 볼일을 보러 떠나겠지만 막상 너는 이야기 상대가 필요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아직 눈을 맞추지도 못하는 아기와 무언가를 나누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니까. 하지만 네가 아기를 바라보는 눈빛, 너의 마음이 젖을 통해 아기에게로 전달된다는 것을 기억해줘. 아기는 다 알고 있다더라.

게다가 아기는 어찌나 젖을 자주 먹는지. 조금 먹고 잠들어서 눕혀 놓으면 조금 자다가 일어나 다시 젖을 찾고... 그렇게 하루 종일이라고 생각해봐. 평생 단 한번도 며칠동안 계속 잠이란 것을 2-30분 단위로 자다 깨다 해 본적이 한번도 없는 너에게는 고문도 그런 가혹한 고문이 없을 거야. 누구나 가장 힘들어하고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지. 나도 그랬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시간은 저절로 조절 된단다. 아기가 너무 못 자는 것 같으면 아기가 깨기 전에 젖을 약간 짜내어 전유(앞에 나오는 묽은 젖)말고 후유(뒤에 나오는 진한 젖)를 먹여봐. 그래도 큰 차이는 없겠지만. 아마 잠을 못자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 기분도 우울해지고 눈물도 뚝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그런 고통의 순간들이 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너를 엄마라는 존재로 바꾸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한다. 기꺼이, 당연히, 감사하며 감수할만한 고통이지. 결국 그런 고통의 시간이 이후의 너의 엄마노릇을 더욱 수월하게 해 줄 테니.

한달만 견뎌. 그러면 전혀 다른, 훨씬 쉽고 즐거운 또 다른 한달이 온다. 두 달이 지나면 고통은 거의 없어지고 즐거움만이 가득하게 될 거야. 물론 고민은 늘 있지. 망설임도 있고 의문도 있고. 그러나 그렇게 고민과 안달과 호기심이 있는 시간-그것이 첫 아이를 키우는 시간만이 주는 선물이란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한 가지는 그 시간동안 아기의 아빠에게 역할을 충분히, 많이 주라는 거야. 내가 두 아이를 통해 경험한 바로는, 그 시간동안 아기와 많이 접촉한 사람을 아기는 나중에 분명히 알아보는 것 같아. 설혹 나중에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아기는 첫 나날동안 자주 만났던 사람들에게 친밀함을 표현하더라구. 그러니 아무리 바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아기보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그런 일이 얼마나 있을까- 일단 미뤄두고 될 수 있는 대로 너와 아기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야. 젖먹이고 재우는 일은 네가 해야 할 일이지만, 목욕시키고 기저귀 가는 일은 일부러라도 아기 아빠가 꼭 하도록 해봐. 그런 시간은 분명 아기아빠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테니.

잔소리만 많은 친구지? 사람은 누구나 제 몫의 삶을 사는 건데... 내가 너무 오지랖이 넓다 싶구나. 네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어. 엄마가 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나누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께. 화이팅!

너를 사랑하는 친구, 보림이가.

이 글은 오늘 최근 아기를 낳은 제 친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혹시 도움이 되실 분이 있을까하여 이렇게 공개합니다.

by bobab | 2008/07/28 03:56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29)

좋아함의 힘

준수는 남자아이라서 그런지, 어린 아기일 적부터 바퀴를 좋아했다. 흙 묻은 유모차 바퀴를 손으로 붙잡고 굴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바퀴달린 것이라면 뭐든 다 관심을 가졌다. 바퀴가 더 많이 달려서 그런지 자동차보다는 기차를 훨씬 더 좋아했고, 롤러블레이드를 보고는 “기차 발신(준수는 처음엔 신발을 발신이라고 불렀다)”이라고 부르며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준수에게 기차에 관한 책이나 기차가 나오는 동화책을 사주기도 하고, 시내나 지방에 갈 때는 일부러 기차를 타기도 했다.

그냥 모든 기차를 좋아하다가 토마스기차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나서는 그 세계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더니, 어느새 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변하는 달의 모양이 나와 있는 책을 끝없이 읽어 달라기도 하고 우주까지 관심이 옮겨져 태양계의 순서까지 줄줄 외우며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어느 별엔 대기가 무엇으로 되어 있고 뜨거운지 차가운지, 행성 속에 외핵과 내핵이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나와 있는 책을 계속 들고 와서 읽어 달라기도 했다. 또 언제부턴가는 텃밭과 텃밭 가는 길에서 본 꽃과 열매의 암술과 수술을 가지고 집요하게 설명을 해 달라면서 책에서 본 꽃턱이니 꽃받침이니 하는 말을 주워가며 그걸 그림으로 그리면서 나에게 설명하기도 하고, 갯벌의 존재를 알고 한번 다녀오더니 갯벌에 사는 조개, 고둥, 게들이 나온 그림책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절대 혼자 읽지는 않고T.T- 읽어 달라 한다. 그뿐인가. 천둥이며 번개며 비...날씨에 관한 것까지 궁금한 것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근데 준수는 신기하게도 그 모든 것들을 읽고, 듣고 나면 거의 외우는 것이다. (아마 아직 글자를 못 읽어서 더 그럴 것이다)

언젠가 내 블로그의 글을 읽으신다는 분에게서 아이에게 어떤 책을 사주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출판사 이름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사실 전혀 신경 써보지 않았던 터라, 그냥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의 책을 사준다고 대답했었다. 기차를 좋아할 때는 ‘기차’라는 검색어를 쳐서 찾고, 우주를 좋아할 때는 ‘우주’라는 검색어를 쳐서 책을 찾았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이가 먼저, 제 스스로 좋아하고 알고 싶어 하기 전에는 무엇이든 일부러 가르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글 또한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배움이란 무엇일까. 공부란 무엇일까. 나는 공교육을 받는 12년 동안 비교적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했다. 그러니까 시험을 보면 틀린 문제보다 맞은 문제가 더 많은 시험지를 들고 집에 오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 방대한 지식들 중에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시험 전에 열심히 머리에 구겨 넣고, 시험이 끝나면 그 기억은 어디론가 다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갖고 나서 했던 공부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궁금해서 시작한 것들은 쉽게 날아가 버리지 않았다. 정말로 좋아해서 했던 공부들은 나에게 남았고 진짜 내 것이 되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있어서 일생의 공부가, 배움이 그러한 것들이었으면 좋겠다. 비록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만 알게 될지라도-그러나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관심은 자연스레 확장되는 것 같다- 배움이라는 것이 좋아함이라는 내면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어 그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고 즐거운 것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면 배움은 기쁨이 되고 그 내용은 자기 안에 살아있는 무엇이 되지 않을까.

by bobab | 2008/07/23 02:30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8)

나의 선택

시간이 좀 흐르고 나니 내 속의 많은 것들이 진정되었다. 아직도 조금은 떨리고 한숨도 나오지만,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글에 대한 불만과 비판은 사람의 다양성을 고려해 볼 때,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공간은 일인미디어, 즉 나만이 그 방향을 선택하고 만들어 나갈 권한이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독자로서 그런 느낌과 생각을 갖는 건 자유더라도 이 곳에 그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은 비난이 아니라 예의바른 충고 혹은 바람이라는 형식을 갖추는 것이 적절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상황에서 이성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정중한, 조심스런 권고였다면 이렇게 아프지도 혼란스럽지도 않았을 것이고 좀 더 일찍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을 텐데, 나 역시 분노에 휩싸여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이 곳은 제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곳이니 위와 같은 비난은 합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글이 상처가 되셨다면 죄송합니다. 앞으로 글을 쓸 때 좀 더 신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를 했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화를 내고, 울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는 분도 있었으나 그게 나였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자 희망하고 노력하는 평범한 엄마일 뿐이다.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 때로는 악다구니를 하고 협박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는, 완벽하고는 거리가 먼 인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내가, 내 글이 솔직하다고는 하지만 이 곳의 글을 통해 나타난 내 모습이 온전한 진짜 내 모습일리는 없다. 내 부분이고, 이상이고, 느낌과 감정과 생각의 단편일 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오랫동안 들르다보면, 나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만들게 되는 모양이다. 글이든 사진이든 어떠한 경로로든.

여러분이 써 주신 댓글 속에 내가 좀 놀랐던 부분이 있다. 내가 ‘형편이 여유가 있으니까’ 직장에 다니지 않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면서 키우고 있다는 시선이었다. 물론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인색하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라 이만하면 충분하고 넉넉하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다행히 부모님은 여유가 있는 편이시지만 내 살림만 놓고 봤을 때 나는 봉급이 박하기로 소문난 건축설계업 6년차 직장인인 남편의 월급만으로 생활하는 샐러리맨의 아내이다. 일정액을 저축하고나면 꼭 필요한 것만 사도 나머지 생활비가 늘 아슬아슬한 생활을 해서 앵갤지수가 터무니없이 높다고 남편한테 구박을 엄청 받는다. 내 옷이며 신발은 살 생각도 못하고 애들 물건조차도 거의 사지 않는데도 말이다. 준수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던 것도 사실 처음엔 돈이 없어서였다. 준수를, 내 가치관에 맞는 곳인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다. 견학차 방문했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시설도 좋고 환경도 좋고 육아철학-그저 애들을 놀게 하는-도 맘에 들어 꼭 보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준수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 둘 다 회사를 쉰지 오래되어 저축해 놓은 돈을 다 써버려 출자금으로 낼 돈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다달이 내야하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도 준수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던 첫 번째 계기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위해서였다. 내가 회사를 다녔으면 벌었을 돈을 대신하여 내가 몸으로 때우고자했던 것이다.

아이를 더 많이 낳겠다고 하면, 남편은 묻는다.
애를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더 낳으려고 하냐고. 요즘 대학 등록금이 얼마인줄 아냐고. 결혼은 어떻게 다 시키려고 하냐고. 애 하나 낳고 또 삼년씩 일 안하면 돈을 언제 버냐고. 난 그 돈 혼자 다 벌 자신이 없다고.

그럼 난 대답한다.
난 돈 안들이고 애 키울거야. 그리고 대학 등록금이나 결혼자금이 없으면...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난 애들이 그 돈보다는 지금 내가 곁에 있어주는 것을 더 원할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게 내 판단이고, 내 선택이다. 내 판단이 틀릴 지도 모른다. 나중에 아이들이 돈 없는 부모를 원망하게 될지도.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로서의 삶은 온전히 내 몫이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당분간 덧글쓰기를 로그인한 분께만 허용하겠습니다. 스팸덧글이 정말이지 징그럽게 달리네요. 해결책 아시는 분 좀 알려주세요!*

by bobab | 2008/07/19 01:56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21)

상처에 대한 정리

정말 힘든 하루였다.

아침부터 습도 높은 더위는 집안 구석구석의 공기를 답답하게 하며 숨쉬는 모든 이들을 힘들게 했는데, 나는 머리 속이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 나를 부르며 놀자는 준수의 부탁을 무시했으니 준수 역시 짜증이 났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반가운 이웃과 함께 한 점심밥은 명치끝에 걸려서 내려가질 않았고, 오늘따라 유난히 자신의 물건을 양보하지 않으며 동생들을 밀쳐내는 준수의 아이다운 짜증은 다시 내 짜증을 부르고, 내 짜증은 다시 준수에게로 흘러가 준하에게로 넘쳐났다. 이렇게 흐르고 넘치는 것이 짜증이 아니라 애정과 이해여야 함을 알고 있는데 현실은 이렇게 어이없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었다.

상처를 받지 않는 편이라는 말이 남이 한 말을 오래 가슴에 담아 두고두고 슬퍼하진 않는단 말이지 모든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쉽게 좋아하고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잘, 우는 사람이다.

준하가 잠든 틈에 잠깐 내가 쓴 포스팅의 긴 댓글들을 읽었다. 그리고 나서 준수를 내 등 뒤에 두고 한참을 울었다. 가끔 준수가, “엄마 왜 울어?”라고 묻곤 했지만, 왜 우는지 설명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나는 마음이 아프게 울고 있었다. 그리고 울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왜 우는가? 무엇이 나를 눈물 흘리게 하는 것인가? 비난? 어떤 비난? 내가 배려심이 없다는? 배려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비난이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인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만든 공간에, 내 자유의지로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쓰는데,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내가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을 글을 써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를. 나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글을 쓰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내게 아무런 금전적인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내가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글을 쓰고 돈을 받기로 계약했는데 그 계약내용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배려심 있는’ 글을 써야할 이유로서 내가 납득한 두 가지는 내 지인들의 다정한 충고대로 ‘좀 더 설득력 있는 글이 되기 위해서’와 ‘이렇게 익명성 속에 숨어 무례하게 퍼 부어지는 폭력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덧글을 허용했다는 것이, 자신의 메일 주소 하나 밝히지 않은 -메일주소 하나로 내가 뭘 할 수 있겠냐 마는- 나로서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맘대로 내 글과 내 가슴에 갈퀴질을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물론 덧글이 연예인 기사에 한 두줄씩 달리는 소위 무뇌아들의 수준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그렇다면 더욱 실망스러운 것 아닌가? 그렇게도 자식 사랑이 지극한 긴 글을 쓸 줄 아는 지성을 가진 엄마라면 적어도 자기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내 공간에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쓰는데, 그런 공간에 글 쓰는 자신에 대한 구체적인 어떤 것도 밝히지 않은 채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냐며 비난하는 것이 과연 멋진 행동인가? 싫으면 읽지 말라는 것이 나의 무례한 요구인가? 대체 누가 무례한 것인가?

나는 이러이러하다, 라는 내용조차 상처가 될 뿐이라며 비난을 가하니 나는 이제 배려심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다. 아까는 어떻게 써야 할까 하고 잠시 고민을 하면서 어렵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덧글을 읽고나니 도대체 어떻게까지 써야 이미 어떤 말도 고깝게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용납할만한 수준이 되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적을 만들지 않으며 사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지나치게 솔직하고 단호한 것이 나라는 사람의 한계이자 특성임을 나는 안다. 이러한 나의 모난 성격은 적을 만들지만 한편 나를 나답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당분간 이런 소모적인 글쓰기는 하고 싶지 않다. 폭력의 파도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시간을 가져야 할지 생각해야겠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힘든 하루를 보냈지만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울다니- 이런 힘든 시간이 언젠가는 나에게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by bobab | 2008/07/15 03:01 | 건강하게 살아가기 | 트랙백 | 덧글(45)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