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나는 수술을 받아 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척추에 새끼손가락 길이의 나사못 네 개를 박아서 팔뚝 길이의 철심을 고정시키는 네 시간 반짜리 대수술이었다.

그저께 나의 어린 아들 준하도 수술을 받았다. 26개월, 탈장이 일어나는 부위의 주머니 입구를 묶고, 고환에 생긴 수종을 제거하는 삼십분짜리 간단한 수술이었다.

수술. 이 말만큼 남의 일 일 때의 느낌과 내 일 일 때의 느낌이 다른 단어가 있을까. 죽음이라던가, 이별이라던가 하는 일들은 겪지 않아도 그 섬찟함을, 그 무거움을, 그 아픔을 자주 상상하게 되지만 수술은 그런 상상을 잘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일까? 수술이라는 과정이 가진 교정과 치료라는 이미지는 고통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누가 수술을 받았다하면, 결과에 주목할 뿐이지 그 고통에 더 주목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나, 혹은 내 아이가 되는 순간, 수술은 어떤 효과를 가져 올 것인지 보다는 수술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기 마련이다.

내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며칠 뒤 학교 복도에서 친구와 이야기 하며 처음으로 울었었다. 두려웠다. 너무나 두려웠다. 내가 받을 수술이라는 말이 벌써 내 살을 찢고 마취라는 미지와 고통의 세계로 나를 데려가는 것 같았다.

내 아이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난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며칠 동안을, 거의 한 달 동안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망설였다. 지금 내가 하는 판단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상담을 받고, 책을 읽으면서도 쉽게 자신이 서질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그렇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렇게 위험한 수술을 받기로 금방 결정할 수 있었을까. 아니,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내가 그런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얼마나 걱정하고 안쓰러우셨을까.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

바보 같은 딸은 이제야 그 마음이 조금 헤아려진다. 내 아이가 아주 작은 수술을 받을지를 결정하는 일을 하면서. 두려움에 떨며 자지러지게 울다가 마취가스를 마시고 늘어진 내 아이를 눕혀놓고 돌아 나오면서.

준하가 받은 건 아주 간단한 수술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도 내 아기가 전신마취를 당해서 엄마인 나의 눈이 가 닿지 못하는 수술실에 들어가는 일은, 엄마로서는 아무리 아무리 노력해도 간단하게 생각되는 일이 아니었다.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준하를 내려놓고 나오면서 또 눈물이 나왔다.

내가 세상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도 모르면서 산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부모님의 마음을 내려 않게 했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술 받는 자식을 바라보아야 하는 쓰라린 가슴앓이를 하며 사는지. 지금 이 시간 자식을 위해 병원에 있을 모든 부모들에게 진한 위로를 보내고 싶다.

by bobab | 2009/05/09 02:02 | 건강하게 살아가기 | 트랙백 | 덧글(18)

아이를 먹이는 일

나의 하루는 아이들을 먹이는 일로 채워진다. 일어나자 마자 아침 챙겨서 먹이고 치우고, 조금 있다가 점심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빨래 널거나 잠깐 쉬었다가 간식 만들어 주고, 또 저녁 반찬 만들어서 차리고 먹이고 치우면 하루가 다 간다.

나는 아이를 먹이는 일에 있어 몇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아이가 먹여달라고 하면 먹여주되, 내가 밥숟가락을 들고 애를 쫒아다니진 않는다는 것. 둘째는 아이가 먹고 싶어할 때까지만 먹게 한다는 것. 즉 절대로 억지로 먹게 하진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배가 아주 고플때만 상에 붙어 있지, 조금만 배가 부르면 놀러 가버린다. 그러면 한명 한명 불러가며 밥숟가락 입에 넣어주며 먹이는 일이 내가 하는 주요 임무다. 아이들은 먹는 일을 어른처럼 '한자리에 앉아서 해야하는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눈 뜨자마자 놀이감부터 찾으며 놀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이다. 허기만 메워지면 노는 일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나는 요령껏 레스토랑 놀이나 우주선 놀이로 아이를 먹인다.

나: "손님. 나물밥 주문하셨나요? 나물밥 나왔습니다."
준수: "저는 김밥을 먹고 싶은데요."
나: "손님. 김밥은 예약해드릴께요. 지금은 이 밥 드시고, 나중에 오세요."
준수: "네, 알았습니다~."
혹은,
나: "준하별! 준하별! 착륙준비 바랍니다. 지금 우주선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준하가 입을 벌리고 숟가락 우주선이 입안으로 들어간다)
"준수별! 준수별! 착륙준비 바랍니다. 앗 기체가 불안정하군요. 얼른 착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준수: "기체가 불안정한게 뭐야?"
나: "우주선이 많이 흔들린다는 얘기야. 고만 먹을 거야?"
준수: "아냐 더 먹을래. 아~!"

늘 놀이를 하는 건 아니다. 먹으러 엄마에게 달려오기 시합을 하기도 하고, 또 국수나 떡국 같은 음식은 제법 오래 앉아서 스스로 먹기도 한다. 아이들은 아주 천천히 먹는다. 천천히 먹으면서 오래 먹어서 많이 먹는다. 어떤 때는 먹이는 데만도 한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_-;

먹여주는 일이 좋지 않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앉아서 스스로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먹도록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직은 무언가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일"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지 않다. 놀이에 열중해 있는 아이들을 억지로 붙잡아 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지금 놀이에 언제라도 풍덩 빠져든다. 그것은 그림을 그려도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그림 그 자체가 됨을 의미한다. 책을 비스듬하게 놓는 일, 블록을 쌓는 사소해보이는 일에도 온 정신이 온전하게 하나로 모아져서 그 행동을 하는 아이 자신의 존재 조차 잊는 것이다. 인생에서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게다가 그런 시간들에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열쇠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일부러 식사시간에 집중하여 먹이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하루 종일 놀면서 조금씩 먹을 것이다. 그건 차리고 치우는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못할 일이다. 그래서 끼니때 집중하여 먹인다. 근데 그건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아이들은 배가 부르면 잘 놀기 때문이다. 배가 고플땐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짜증을 내거나 뭘 하냐고 비집고 들던 녀석들이 배가 부르면 어느새 내 곁에서 저만치 멀리 떨어져서 놀고 있다.

하여 나는 하루 중 아이들 저녁을 다 먹이고 난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 이제 치우기만 하면 된다는 안도감. 하루의 일을 대부분 잘 끝냈다는 성취감으로 뿌듯해진다. 이제 재우기만 하면 나도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을 맘껏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한 몫한다. 내가 아무리 아이들을 예뻐한다해도 나도 내 시간도 갖고 싶고, 좀 쉬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저번엔 저녁을 자알 먹은 아이들이 번갈아서, 거의 동시에 똥을 눈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약간 허탈해졌었다. 쌓아올린 탑이 무너진 느낌이랄까. 채워넣은 독에서 물이 빠진 느낌이랄까.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이런 일일 것이다. 흔적이 남지 않는 일상을 쌓아가는 일. 썼다 지우는 모래사장의 파도처럼. 보이진 않지만, 무언가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무언가가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있을 것이다.

by bobab | 2009/02/02 01:34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20)

남의 아이, 나의 아이.

내 아이를 키워보기 전에,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 내가 어려서부터 나보다 어린 애들을 돌보는 일을 너무 자주, 많이 해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주 얼굴을 보게 되는 친척 중에서도, 부모님의 가까운 친구분들의 아이들 중에서도 나는 대게 가장 나이가 많았다. 친척들이 우리집에 모이는 제사날엔 내 친동생들 세명말고도 일곱명의 사촌동생들까지 모아 놓고 나는 소위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야 했다. 또 나와 일곱살의 터울이 지는 남동생은 내가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개면서 엄마를 도와 돌봤던 것이다. 따라서 내게 아기라는 존재는 별로 새롭지가 않았다. 내 주변엔 어릴적부터 아기가 너무 많았고, 나는 그게 별로 좋지 않았다. 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의 아기를 낳게 되었을 때, 나는 몇가지를 예상했다. 그것은,
'나는 적어도 애 안고 돌보는 일은 능숙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기를 과연 얼마나 좋아할 수 있을까.'
였다.

나의 두가지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일단 나는 누군가를 도와 남의 아기를 돌보는 일과 '내 아기'를 돌보는 일은 완연히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아기를 낳은 바로 그 다음 날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여러번 아기를 안아본 경험덕에 아기를 안는 폼이 안정적인 편이긴 했다. 그러나 안기만 하면 뭐하는가. 먹여야지, 재워야지, 씻겨야지, 기저귀 갈아야지. 무엇보다 언제나 울음일뿐인 아기의 의사를 알아채서 그에 맞게 돌봐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오로지 내 책임인 일이라는 것은 직접 겪어보기 전엔 절대로, 절대로 그 느낌을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다행히 빗나간 두번째 예상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는 아기가 너무 예뻤다. 낳은 직후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오늘도, 지금도, 나는 내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록 행복하다.

공원에서, 도서관에서, 목욕탕에서, 쇼핑센터에서 나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는 수 많은 시선과 마주친다. 나도 다시 한번 내 아이들을 바라본다. 내겐 말로 정확히 다 표현할 수도 없을만큼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하지만 내 아이들이 남들 눈에도 내가 보는 모습과 같이 보일리 없다는 걸 안다. 내 아이들도 남들에겐 그저 평범한 남의 아이들일 뿐이다.

그 시선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해도, 나는 기쁘다.
나는 이제, 내가 바라보는 '남의 아이'가, 누군가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리를 걸어가는 저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누군가에겐 그토록 소중한 '나의 아이'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것을, 아기를 낳아 키워보고 나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그 모든 생명이 어미의 품에서 자라고 태어났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엄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정성으로 자랐을 것을 생각하면 모든 사람이 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남의 아이도 예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건 아마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일 것이다.

by bobab | 2009/01/30 02:33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나의 육아요령 몇 가지

사람이 요령이 있느냐 없느냐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판단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니 누구도 어떤 사람을 절대적으로 요령이 많은 사람이라던가, 혹은 요령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아니 부부란, 늘 붙어서 살다보면 서로의 비슷한 점보다는 다른 점이 서로의 눈에 쉽게 띄기 마련인지라 늘 상대와 비교하여 판단을 하곤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부부 중에서 늘 요령을 피우는 편은 언제나 나였다. 그건 별로 힘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일을 요령껏-승환이 보기엔 언제나 “대충, 혹은 대강”이지만-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시작하기에 앞서 잔머리를 굴리는 습관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뭐든 철저하게 끈기를 가지고, 하기 싫은 일이라 해도 끝까지 책임감 있게 해내는 승환에 비하면, 나는 언제나 무슨 일이든 좀 더 쉽게, 간편하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부터 고민하는 편이다. 문제에 대해서 정면승부를 하려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큰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을까 요령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요령이 결코 나쁘다고만 보진 않는다. 게다가 육아에 있어서 요령은 분명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이제 겨우 애 둘 키워본 내가 육아에 대한 요령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그래도 내가 아는 한도에서 다른 엄마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하여 내 요령들을 소개할까한다.

첫째. 아이가 너무 배가 고파하기 전에 먹이고, 너무 졸려 하기 전에 재우는 것이다. 약간의 허기와 약간의 졸음은 괜찮다. 그러나 애가 짜증을 낼 정도로 배고프게 하거나, 졸리게 하는 것은 일을 몇 배로 힘들게 하는 지름길이다. 배고픈 아이는 엄마까지 짜증이 나도록 매달리며, 졸린 데도 잠들 시점을 놓친 아이는(갓난아기일수록 더 그렇다) 짜증이 폭발하여 울어 재치기만하고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가까운 데로 외출을 하더라도 꼭 먹을 것과 물을 싸가지고 다닌다. 애들은 바깥으로 나가 활동량이 많아지면 쉬 배고픔을 느낀다. 그렇게 아이가 배고픔을 느끼는 때에, 밖에서 혹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이에게 무언가를 먹이는 일은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훨씬 수월하게 만든다. 나는 애가 졸려하면 점심 밥상 앞에서도 그냥 재운다. (낮잠을 안 잤는데 저녁 6시반부터 잠을 자려고 하면 조금 나중에 재우려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 밥 먹을 때 아이도 같이 먹었으면 하는 것은 돌보는 사람이 편하고자 하는 마음일 뿐이다. 아이는 제 신체리듬대로 졸리우면 자고, 배고프면 먹어야 건강하고 편안하다. 아이가 편안해야 엄마도 돌보기 편한 것이다.

둘째. 이것은 두 아이를 키울 때의 요령인데, 아직 둘째가 말을 못할 때, 첫째와 둘째가 마찰이 생길 경우 둘째를 대신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엄마가, "형! 나 이 자동차 잠깐만 빌려줄래? 좀 있다 돌려줄께."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인형을 대신하여 이야기한다고 해서 “엄마! 무슨 인형이 말을 해?”라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동생을 대신하여 이야기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불편했던 첫째의 심기도 편안해지고, 둘 사이의 관계도 부드러워진다. 첫째도 장난감을 막무가내로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둘째가 말로 부탁하면 가끔 제 장난감을 스스로 빌려주게도 되는 것이다.

셋째. 아이들이 싫어하는 무언가를 해야 할 때-옷입기, 이닦기 혹은 손톱깎기등-는 덜 하기 싫어하는 애부터 시킨다. 그러고 나면 나머지 아이는 샘이 나서 순순히 할 때가 많다. 단 이때는 미리 말을 많이 해서 애들의 반발을 강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냥 가볍게, “손톱을 깎아야겠다. 너무 길었어. 오늘 친구들을 만나려면 손톱을 깎아야 함께 놀기 좋거든.” 정도로만 말하고 덜 하기 싫어하는 애부터 시키는 것이다. 혹은 엄마인 내가 먼저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을 무척 좋아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아이가 강하게 반발하면 나는 일부러 시키지 않는다. 기회는 나중에라도 또 오며, 반드시 그 순간이어야 할 일은 사실 별로 없다. 억지로 강요하는 것은 반발심만 키우기 때문에 나중에 같은 일을 하기 더 힘들어진다.

넷째. 도저히 감당 못할 장난은 애초에 차단한다. 나는 애들에게 뭐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주는 편이다. 엄마가 처음엔 한심해하셨을 정도였다. 뭐든 다 하게 해주니 정말로 다 하려고 든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애들은 고집이 센 편이다. 사실 난 아이들은 다 그럴 거라고 믿고 있지만) 그러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결과-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다 집어던지고 싶은 심정이 될 정도-를 가져올 장난은 애초에 차단한다. 그럴만한 재료, 도구를 아예 애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치워두는 것이다. 그럼 엄마인 나의 살림부담은 훨씬 가벼워진다. 대신 대체할만한 놀이로 욕구는 충족되도록 해준다. 부엌에서 물장난은 안 되지만, 욕실에서는 실컷 하게 해준다던가, 쌀 가지고 장난치는 건 안 되지만 흙장난은 맘껏 하게 해주는 것이다. 난 이걸 방어운전이 아닌 방어육아라 부른다.-_-;

다섯째. 아이에게 일정을 미리 이야기해준다던가, 선택권을 준다. 사실 애들에게 일일이 말하는 것을 잊고 애들을 어딘가로 데려갔다가 데려오는 일이 많다. 어른이야 미리 다 알고 생각하고 있던 상황이지만, 애들이야 어디 그런가. 아이들 입장에선 엄마가 갑자기 “가자!”하면 가야하고 “이제 집에 가자!”하면 또 집에 가야하는 상황이 편안할리 없다. 하지만 미리 약속이 있다고 알려준다던가, 집에 갈 시간이 얼마 남았다 등을 미리 이야기해주고 아이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면 아이는 훨씬 부드럽게 엄마의 뜻을 따른다. 간혹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가, “안 갈래. 난 기차 더 볼 거야!”라고 지하철 승강장에서 요지부동이면, “기차 몇 번 볼 건데?” 하고 물으면 된다. 아이는 스스로 말한 횟수를 크지 않은 오차범위 내에서 지킨다. 부드럽게 살기 위해서,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지 않은가? 사실 나도 추운 지하철 승강장에서 25분까지 버텨야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울려 가며 끌고 가면서 싸우는 일보단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써 놓고 보니 참 별일 아니다. 아마 많은 엄마들이 이미 알고 있을 내용이다. 그러나 가끔은 남이 기저귀 접는 법을 곁눈질 하는 것마저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사소한,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말이다.

by bobab | 2009/01/28 02:36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16)

준하야, 고마워.

나는 준하를 볼 때마다 "생명"의 의미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잠들었을 때는 점잖은 부처같은 얼굴을 하는 아이가, 깨어있을 때는 어찌나 생기발랄한 장난꾸러기와 애교쟁이의 얼굴을 하는지. 살아있다는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의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게 되는 것이다.

준하는 이제 22개월이다. 요즘엔 말을 뭐든지 따라한다. 아직 발음이 정확하진 않지만, 저렇게 무슨 말이든 따라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말하기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이리라. 아기는 처음엔 아무리 여러 번 들어서 아는 말이라도 제 입밖에 쉽게 내 놓지 않는다. 아주아주 여러번 듣고 이해하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제 입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언어가 "폭발"하는 시점이라는 표현이 생기는 것 같다. 며칠만에 갑자기 구사하는 단어수가 몇 배가 되고, 무슨 말이든 죄 따라하는 것이다. 정확하지 않아서 가끔 못알아 듣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너무나 귀엽다. -_-;

돌이켜보면, 준하는 거의 내 손에서 내려 놓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꼭 예뻐서라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첫째로부터 보호할 필요도 있었고, 내 자신이 애를 안고 지내는 것을 이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다음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첫아이때는 그렇지 않았다. 아기를 안는 일도 행복했지만, 내려놓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기뻤다. 그래서 아기가 잠깐이라도 누워 놀면 얼마나 신이 났는지(그런 일은 거의 없었지만). 소서도 보행기도 없이 준수를 키웠기 때문에 나는 어쨌든 준수가 울 때마다, 안아 달라고 할 때마다 안아주었고, 눕혀 놓더라도 손발 잡고 노래하고 율동하며 쇼를 하고 놀아주었다. 태어나 지금껏 -나도 갓난아기때는 엄마에게 안겨 있었겠지만, 그 기억은 나지 않는 관계로- 내 몸을 누군가에게 1시간이상 밀착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데, 눈을 뜨고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제 멋대로 움직이는 어떤 존재를 품에 안고 있으려니 얼마나 몸이 고되고 그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는지. 그래서 난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잠깐이라도 여건이 되면 아기를 내려놓거나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길 궁리를 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나서는 그렇지 않았다. 내 몸은 이미 누군가를 안고 있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일이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당연하게 느껴졌다. 일년만 지나도 이렇게 아이가 품안에 쏙 들어오는 느낌이 사라질만큼 자란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준하는 보기보다 정말 묵직한 아이인데도(별명이 맷돌이었다) 그 아이를 한 팔에 안고 요리하는 일이 별 일이 아닌 것이 된 것이다.

워낙 많이 안아주어서일까? 아님 원래 성격이 그래서일까? 준하는 엄마 손을 벌써 먼저 놓는다. 위험한 곳이라 내가 잡아주려고 해도, 내 손을 놓고 자기 혼자 가고 싶어할때가 많다. 그래서 어쩌다 가끔 얌전히 내 손을 잡아주면 나는 황홀한 기분이 된다. 아이의 손을 놓지 못해 갑갑해하던 내가, 내손을 잡아주는 아이에게 고마워하게 되다니. 엄마가 된 시간동안 나도 많이 변한 모양이다.

by bobab | 2009/01/17 01:55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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