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세계

건너와 보기 전엔 몰랐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마 이미 엄마가 된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이야기의 의미를 알 것이다. 이곳은 내가 이전에 속했던 곳과는 완연히 다른 세계이다. 그리고 이 세계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세상일이란 다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겪어보기 전엔 짐작하기도 힘든 것이다. 그러나,

어쩜 이렇게까지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드는 것일까, 엄마라는 위치는.

나는 겁이 많아졌다. 길을 건널때도 차를 열심히 살핀다. 만약에 교통사고라도 나면 준수를 못돌보니까.
나는 뻔뻔해 졌다. 내가 담배연기를 마셔서 젖을 통해 나쁜 물질이 준수한테 가면 안된다고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내앞에서 금연을 요구한다.
나는 열심히 건강관리를 한다. 귀찮아도 운동을 거르지 않고 체력관리를 한다. 내가 기운이 없으면 준수랑 재밌게 놀아줄 수가 없으니까.
나는 무기력이 없어졌다. 일주일 내내 밖에서 일해도 준수를 위해서 주말엔 언제나 나들이다. 낮잠으로 도배하던 주말풍경은 사라졌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일이 남일 같지가 않다. 언젠가 준수에게 다가올 환경으로 느껴진다. 뻔뻔한 어른들이 무섭고, 걱정되고, 그런 어른들 밑에서 자라 준수의 친구가 될 아이들이 어떨까 염려스럽다.
나는 이제 아이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원래는 아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준수를 키우다 보니 남의 집 애도 다 예뻐보인다. 누구하나 하찮은 아이는 없다, 다 소중한 생명들이다.
나는 이제 가장 무서운 감시자가 생겼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배우는 준수가 있기에 어떤 행동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술먹고 늦게 집에 들어오는 것도 이젠 쫑이다.

한시도, 한숨도 나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 수가 없다. 그것은 가슴 벅찬 기쁨인과 동시에 묵직한 책임이기도 하다. 어쩜 이렇게 내 삶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을까, 아이라는 존재는.


준수의 돐에서 몇일이 지나면 내 생일이었다.
나는 내 생일이 내가 태어난 날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그러나 준수를 일년 키운 후에 생일을 맞아보니, 내 생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 아니라 엄마가 날 낳아주신 날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아침엔 처음으로 먼저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내 삶은 내가 걸음을 스스로 걷기 전에 나를 키워주신 엄마가 계셨기에 시작될 수 있었으니.

그러나 나는 내가 준수한테 베푸는 관심과 사랑의 반의 반만큼도 엄마한테 되돌려 드리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너무나 좋은 분이시고 나는 무척이나 엄마를 사랑하고 있지만 말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받은 만큼만 돌려주고 준 만큼만 받는 공식은 엄마라는 세계에서는 전혀 통하질 않는다. 그래서 난 감히, 이 세계는 다른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by bobab | 2006/02/23 00:01 | 아이키우기 | 트랙백(1) | 덧글(8)

Tracked from 이오공감의 흔적 at 2006/02/23 12:03

제목 : 2006년 2월 23일 이오공감
정녕 영어에서 헤어날 수는 없는가;  by derMoment영어를 미워하게 된 지는 꽤 되었다. 솔직히 말해 한 때는 영어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고 2까지는 꽤나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을 듯.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엄마의 세계  by bobab아마 이미 엄마가 된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이야기의 의미를 알 것이다. 이곳은 내가 이전에 속했던 곳과는 완연히 다른 세계이다. 그리고 이 세계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는...'Shift' 키의 중요성  by Jae10 한때 기계식 키보드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었......more

Commented by 곰곰이 at 2006/02/23 12:18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이말이 생각나는군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강한모습 아름다워보입니다.
Commented by 아크몬드 at 2006/02/23 17:10
아이를 위해 강한 마음을 먹는 모습.. 대단한 우리의 어머니들..
Commented by 뿌리 at 2006/02/23 18:51
감사합니다. '어머니들'의 강인함과 소중함이란~ ^ㅡ^

항상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일깨워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머글관찰자 at 2006/02/23 19:17
정말 가슴 찡한 글이네요 ^^
Commented by fleur at 2006/02/23 19:32
저도 이제 갖 십개월이 지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랍니다. 엄마의 세계,가 다르다는 말씀, 절대 공감입니다. 아기를 갖기 전, 아기를 뱃속에 품고 있는 열 달, 아기를 낳고나서의 세상이 정말 천차만별이지요.
때론 너무 힘들어 지치기도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보면, 그 힘든 날들마저도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시간들인것 같습니다.
준수의 미소가 만점이네요.. ^^
Commented by Thanatos at 2006/02/23 21:26
너무 멋진글이에요 ~
Commented by 선호 at 2006/02/25 23:27
가슴 찡하네요. 글 잘봤습니다.
Commented by 성윤 at 2006/03/23 05:48
보림~~ 오랜만이지.
너한테 항상 많이 배운다. 고마워.
책 정말 잘 읽었어. 나도 노력하는 엄마가 되어 볼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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