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절정기

고등학교를 다니던 열일곱 살. 나는 그때 나의 모습을 참 소중하게 생각했었다. 눈에 띄는 미인도 아니고 선생님께 주목받는 성적이 뛰어난 학생도 아니었지만 나는 내 젊음이 참 좋았다. 나의 몸과 마음이 만개하기 직전 잔뜩 부풀어 오른 꽃망울과 같다고 생각했다. 몸은 건강하여 탄력이 넘쳤고,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일로 늘 기뻤으니까. 그래서 지금이 내 인생의 절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되돌아보면 고등학교 2학년때는 척추 측만증 수술을 했으므로 여름방학 내내 누워있었고, 대입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는데. 하지만 왠지 나는, 나 자신이 건강하지 않다고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수술을 하면서도 내가 아직 젊고 어리기 때문에 빨리 나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나는 나의 그 싱싱하고 탄력 있는 몸이 너무나 소중해서,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대학시절에도 난 지금이 최절정일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만큼 매일 매일이 행복하진 않았지만, 지나고 보면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일 거라 생각했다. 열등감과 번민과 고독으로 가득했던 시간이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분명히 성장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여러 가지 고민들이 없었다면, 고독했지만 홀로 떠났던 여행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저 남의 선택과 판단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서른 세 살인 지금. 나는 몸이 열일곱 고등학생 때의 탄력을 잃었음을 절절히 느낀다. 낮잠을 잠깐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남는 이마의 자국은 15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발엔 두꺼운 굳은살이 생겨 거칠거칠하다. 이마의 주름은 조금만 눈을 치켜뜨면 확 나타나고, 눈 밑엔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처가 생겨 딱지가 생기고 그게 아물어 떨어지기까지의 시간이 고등학교 때의 서너배는 걸리는 것 같다. 게다가 세상 만물에 대한 감각과, 나 자신을 향한 타인의 평가에 대해서는 대학교 때의 반의반만큼도 예민하지 못한 나를 발견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닐까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손수 키워가는 시간. 임신했을 땐 배가 잔뜩 불러서 뭘 입어도 볼품없고, 갓난아기를 키울 땐 가슴엔 젖 얼룩이 -어깨엔 젖 토한 얼룩이 잔뜩 진 옷을 입고 지내야 하지만. 비록 나의 외모를 가꿀 시간도,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이, 나에게만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붙들려 정신없이 살아가는 지금이지만. 내려놓으면 우는 아기이기에 팔이 아프도록 안고 있어야 해도, 나는 그렇게 볼을 부비고 있는 시간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하루하루가 지나감이 아깝다. (첫애보다 둘째 애를 낳고 보니 시간은 더 빨리 간다) 아이들은 내가 그들을 돌보며 들이는 시간과 노력, 그 이상의 기쁨을 나에게 돌려주고 나를 자라게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함 그 자체에 보람을 느끼게 해주고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되고 싶도록 노력할 힘을 준다. 그러니 나는 지금, 참으로 눈물 날만큼 행복해서 지금이 내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by bobab | 2007/05/12 03:31 | 아이키우기 | 트랙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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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이오공감의 흔적 at 2007/05/12 12:00

제목 : 2007년 5월 12일 이오공감
흥미기획! 한메일에 쌓인 스팸 메일을 점검해보자!  by 머루뜰한 때는 이메일의 대세를 이루기도 했으나, 오만한 정책을 고수함으로써 시간이 갈수록 다른 회사에 밀린 결과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을 기억하십니까?...내 인생의 절정기  by bobab고등학교를 다니던 열일곱 살. 나는 그때 나의 모습을 참 소중하게 생각했었다. 눈에 띄는 미인도 아니고 선생님께 주목받는 성적이 뛰어난 학생도 아니었지만 나는 내 젊음이...인도여행 2006......more

Commented by RALL at 2007/05/12 12:09
좋은 글이네요.^^ 제 아버지 께서는 인생의 매 순간이 그 시간속의 자신의 전성기라며 지나간 세월에 목매지 말라고 하시더랍니다. 10대에는 10대의, 20대에는 20대의, 30대에는 30대의 전성기가 있는 법이라고요. 그 시간들은 감히 서로 넘볼 수 없는 독자적인 매력과 힘, 그리고 행복을 가지고 있다고 하시던게 떠오릅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는거 같아서 참 부럽기도 하고, 감탄도 나오네요. 이오공감 들렀다가 몇자 주접대고 갑니다.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Commented by sizk at 2007/05/12 13:10
안녕하세요. 저 역시 이오공감을 타고 들어왔다가 감명받고 갑니다.
마침 오늘 의미는 조금 다를지언정 비슷한 포스팅을 한 터라 더욱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매일 매일을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하고 살아가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런 인생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게 해 주신 글, 감사합니다.
덧) 사진 정말 예뻐요! 언제까지나 이렇게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이시길!
Commented by 지혜 at 2007/05/12 13:17
아직 한참 젊은 저는 벌써부터 나이듦을 가끔 한탄하곤 했는데 반성해야겠습니다. 좋은글 보고 가요 :) RALL님의 아버님 말씀처럼 하루하루 열정적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물론 말처럼 실천이 쉽진 않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제 20대는 낭비적인 시간이 되면 안될 것 같아요.^^
Commented by 네꼬 at 2007/05/12 13:38
멋집니다. 아이들이 너무 예뻐보이고, 가족 모두 행복의 오오라가 잔뜩!~ 부러워요 부러워 >_<//
언제나 인생의 전성기이시군요. 아이들이 커가면 그 나름의 행복이 있을테고- 나이 들어 함께 늙어가면 내가 남편 잘 선택했지 하는 행복감에 젖으실테니까요.
읽는 저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포스팅이네요^^ ㅎㅎ
Commented at 2007/05/12 15:1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지읒 at 2007/05/12 15:50
이오공감 타고 왔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Commented by judy at 2007/05/12 20:33
저도 이오공감 타고 왔는데, 정말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순간을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데 잘 안되네요.

가족사진 너무 행복해보이네요^^
Commented by Romancist at 2007/05/12 23:15
느끼는게 많은 글이네요.
잘 보고 잘 느끼고 갑니다 ^^
Commented by 젼이 at 2007/05/12 23:40
이오 공감 타고 왔습니다. ^_^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이런 글을 적을 수 있는 날이 올까요. ^_^
항상 행복하시구, 가족분들 다 건강하세요. ^_^/
Commented at 2007/05/13 00: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Noel at 2007/05/13 09:11
좋습니다 :)
Commented by 아시나요 at 2007/05/13 11:23
좋은글 정말 잘 읽고 갑니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내요.

저도 지금을 이 하루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겠습니다
Commented by bobab at 2007/05/13 22:02
RALL님/ 아버님이 정말 근사한 분이시네요. 멋진 말씀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구 보니 제가 쓴 글도 10대, 20대, 30대에 관한 내용으로 나누어 지는 거네요. 앞으로 다가올 40대에도 그 때만의 멋진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는 것도 기대가 되는 군요.^^

sizk님/ 고맙습니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요. 너무 아쉽습니다.

지혜님/ 20대는 정말 은근히? 힘든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 땐 그 자체를 즐기긴 사실 힘들지요.

네꼬님/ ㅋ 지금도 남편은 잘 선택했다 싶어요. 근데 요즘 많이 아파서... 앞으로 같이 살면서 함께 건강하게 늙어가야 할텐데 말이죠...

비공개님/ 고맙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또 다른 것을 얻게 되겠지요.

지읒님/ 또 오세용~

judy님/ 고맙습니다. 저도 늘 순간을 느끼면서 사는 건 아니랍니다. 다만 요즘...그리고 지금을 느낄 뿐이지요. 갓난 아기 데리고 악착같이 나들이 다닐 만한 좋은 날씨이니까요. 님도 늘 행복하세요.

Romancist님/ 흔적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젼이님/ 그럼요. 지금 당장이라도~

Noel님/ 헤~

아시나요님/ 우리가 손에 잡을 수 있는 행복은 지금 뿐이니까요.^^
Commented by LaJune at 2007/05/18 08:44
열일곱일때는 서른 이후의 나를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서른도 중반이네요. 여전히 정신연령은 어린채로 잘도 살고 있지요.(웃음)
Commented by bobab at 2007/05/18 23:03
LaJune님/ 가끔 내가 과연 어른일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분명히 있지요. -_-;
Commented by 시크릿 at 2007/05/23 15:15
전에 가정분만 준비한다고 덧글 올렸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2주 전에 집에서 아기 잘 낳고 모유수유하느라 고군분투중이랍니다. ^^ 임신했을 때 속보 운동하면서 임신 기간이 내 인생 네 번째 절정기라고 생각하면서 너무나 행복해했었는데... 이 글을 보니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요. 아직 힘든 게 많아서 젖 물리고 창 밖을 보면서 그 때 생각에 눈물이 왈칵왈칵 나는데 저도 시간이 더 지나고 아기를 키우면서 인생 다섯 번째 절정기라고 생각이 들까요? :) 오랜만에 들어와서 이래저래 힘을 얻고 갑니다.
Commented by bobab at 2007/05/23 21:39
시크릿님/ 저보다 용감하신 분이시죠...^^ 순산을 축하드립니다. 다섯번째 절정기요? 그럼요. 사실 임신기간보다 육아기간이 힘들긴 더 힘들어도 분명히 더 행복하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힘드실 때지요. 첫달보다 두번째 달은 훨씬 수월하니 조금만 더 기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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