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5월 12일
내 인생의 절정기

고등학교를 다니던 열일곱 살. 나는 그때 나의 모습을 참 소중하게 생각했었다. 눈에 띄는 미인도 아니고 선생님께 주목받는 성적이 뛰어난 학생도 아니었지만 나는 내 젊음이 참 좋았다. 나의 몸과 마음이 만개하기 직전 잔뜩 부풀어 오른 꽃망울과 같다고 생각했다. 몸은 건강하여 탄력이 넘쳤고,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일로 늘 기뻤으니까. 그래서 지금이 내 인생의 절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되돌아보면 고등학교 2학년때는 척추 측만증 수술을 했으므로 여름방학 내내 누워있었고, 대입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는데. 하지만 왠지 나는, 나 자신이 건강하지 않다고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수술을 하면서도 내가 아직 젊고 어리기 때문에 빨리 나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나는 나의 그 싱싱하고 탄력 있는 몸이 너무나 소중해서,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대학시절에도 난 지금이 최절정일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만큼 매일 매일이 행복하진 않았지만, 지나고 보면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일 거라 생각했다. 열등감과 번민과 고독으로 가득했던 시간이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분명히 성장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여러 가지 고민들이 없었다면, 고독했지만 홀로 떠났던 여행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저 남의 선택과 판단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서른 세 살인 지금. 나는 몸이 열일곱 고등학생 때의 탄력을 잃었음을 절절히 느낀다. 낮잠을 잠깐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남는 이마의 자국은 15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발엔 두꺼운 굳은살이 생겨 거칠거칠하다. 이마의 주름은 조금만 눈을 치켜뜨면 확 나타나고, 눈 밑엔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처가 생겨 딱지가 생기고 그게 아물어 떨어지기까지의 시간이 고등학교 때의 서너배는 걸리는 것 같다. 게다가 세상 만물에 대한 감각과, 나 자신을 향한 타인의 평가에 대해서는 대학교 때의 반의반만큼도 예민하지 못한 나를 발견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닐까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손수 키워가는 시간. 임신했을 땐 배가 잔뜩 불러서 뭘 입어도 볼품없고, 갓난아기를 키울 땐 가슴엔 젖 얼룩이 -어깨엔 젖 토한 얼룩이 잔뜩 진 옷을 입고 지내야 하지만. 비록 나의 외모를 가꿀 시간도,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이, 나에게만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붙들려 정신없이 살아가는 지금이지만. 내려놓으면 우는 아기이기에 팔이 아프도록 안고 있어야 해도, 나는 그렇게 볼을 부비고 있는 시간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하루하루가 지나감이 아깝다. (첫애보다 둘째 애를 낳고 보니 시간은 더 빨리 간다) 아이들은 내가 그들을 돌보며 들이는 시간과 노력, 그 이상의 기쁨을 나에게 돌려주고 나를 자라게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함 그 자체에 보람을 느끼게 해주고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되고 싶도록 노력할 힘을 준다. 그러니 나는 지금, 참으로 눈물 날만큼 행복해서 지금이 내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by | 2007/05/12 03:31 | 아이키우기 | 트랙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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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007년 5월 12일 이오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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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을 보내시는거 같아서 참 부럽기도 하고, 감탄도 나오네요. 이오공감 들렀다가 몇자 주접대고 갑니다.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마침 오늘 의미는 조금 다를지언정 비슷한 포스팅을 한 터라 더욱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매일 매일을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하고 살아가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런 인생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게 해 주신 글, 감사합니다.
덧) 사진 정말 예뻐요! 언제까지나 이렇게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이시길!
언제나 인생의 전성기이시군요. 아이들이 커가면 그 나름의 행복이 있을테고- 나이 들어 함께 늙어가면 내가 남편 잘 선택했지 하는 행복감에 젖으실테니까요.
읽는 저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포스팅이네요^^ ㅎㅎ
저도 순간을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데 잘 안되네요.
가족사진 너무 행복해보이네요^^
잘 보고 잘 느끼고 갑니다 ^^
저도 이런 글을 적을 수 있는 날이 올까요. ^_^
항상 행복하시구, 가족분들 다 건강하세요. ^_^/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내요.
저도 지금을 이 하루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겠습니다
sizk님/ 고맙습니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요. 너무 아쉽습니다.
지혜님/ 20대는 정말 은근히? 힘든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 땐 그 자체를 즐기긴 사실 힘들지요.
네꼬님/ ㅋ 지금도 남편은 잘 선택했다 싶어요. 근데 요즘 많이 아파서... 앞으로 같이 살면서 함께 건강하게 늙어가야 할텐데 말이죠...
비공개님/ 고맙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또 다른 것을 얻게 되겠지요.
지읒님/ 또 오세용~
judy님/ 고맙습니다. 저도 늘 순간을 느끼면서 사는 건 아니랍니다. 다만 요즘...그리고 지금을 느낄 뿐이지요. 갓난 아기 데리고 악착같이 나들이 다닐 만한 좋은 날씨이니까요. 님도 늘 행복하세요.
Romancist님/ 흔적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젼이님/ 그럼요. 지금 당장이라도~
Noel님/ 헤~
아시나요님/ 우리가 손에 잡을 수 있는 행복은 지금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