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 털 by bobab

민소매의 계절이 돌아왔다. 장마 전의 더위도 대단했지만, 아마 이 긴 비가 그치고 나면 그보다 더한 찜통 더위가 오겠지. 그땐 정말 소매있는 옷은 입기 힘들 것이다.

소매가 있는 옷과 없는 옷은 -특히 더울 땐- 착용시 체감 온도의 차이가 매우 크다. 혹시 겨드랑이 부분이 노출되느냐 아니냐가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겨드랑이는 더우면 다른 신처 부분보다 땀이 먼저 나는 곳이니까. 그런 부위가 시원하면 몸 전체가 한결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그런데 민소매 옷을 입으려다 보면 아무래도 겨드랑이 털이 신경쓰인다. 그래서 깔끔하게 보이려고 털을 깎게 된다. 아마 길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 백이면 백 모두 겨드랑이 털을 면도하고 민소매 옷을 입었으리라. 나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 그랬다.

그러나 겨드랑이 털을 깎아 본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털을 깎으면 땀이 더 차고 냄새도 더 난다. 털이 있을 때 보다 겨드랑이의 느낌이 불쾌한 것이다. 그래서 난 깨달았다. 지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겨드랑이 털도 다 필요해서, 있어야할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걸.

그래서 난 아이를 가졌을 땐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았다. 다 필요해서 있는 내 몸의 일부를 소중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몸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지금도 난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고 민소매 옷을 입는다. 일단은 털을 깎지 않는 것이 더 쾌적해서 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겨드랑이 털을 깎는 것이 여성에게만 강요된 일이라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이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성인이라면 남과 여를 불문하고 겨드랑이 털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남자는 겨드랑이 털을 맘대로 보이고 다니면서, 유독 여자에게는 그 것을 감추기를 강요한다. 어떤 코미디 프로에서는 여자가 겨드랑이 털을 보이는 것을 가지고 웃음거리를 삼기도 한다. 세상에, 왜 여자에게만?  이렇게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중잣대가 존재하다니!

여자가 화장을 안하면 예절이 없다는 수근 거림을 받는다지만 그건 그저 수근거림으로 끝나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여자가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았다고 해서 웃음거리가 된다는 사실은 정말 화가 난다. 여성에겐 신체에 필요한 털을 소유할 권리가 없단 말인가!

나는 한국 여성이 멋을 잘 알고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 차림새가 좀 경직된 편이라고 느낀다. 흐트러진 자연스러움이 부족하다. 멋을 내느라 잔뜩 차려 입는 사람도 있겠지만 좀 편안하게 걸쳐 입는 사람도 많이 있는 것이 당연하건만 우리나라 여성들은 그 단정함이 지나쳐 가끔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것이 오직 여성에게만 강요된 단정함과 깔끔함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겨드랑이 털을 만지면서 하게 되는 것이다.



덧글

  • solien 2007/07/17 01:34 #

    여성에게만 강요되었다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안 깎고 다닐 용기는 없는 저입니다.(_ _;
    왜 부자연스럽게 제모를 하고 화장을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여자만-_ㅠ
  • 파란딸기 2007/07/17 03:54 #

    저도 그런 걸 제 몸으로 깨달은 이상, 적어도 가끔 엿볼 수 있는 제모하지 않은 여성들을 보고 단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쳤어요. 하지만 민소매옷을 포기했죠. 몇 번 시도해보았지만,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성격인데도, 일일이 그런 시선과 응대하는 게 싫어서 말입니다. ^^참 보밥님은 ... 이런 걸로 다 사람을 친근한 마음을 들게 하다니...
  • 暗雲姬 2007/07/17 09:23 #

    고2 내 딸이 언제부터인가 제모를 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우울합디다.
    "예쁘다"는 말 한 마디 때문에 여자는 기꺼이 차별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 건가 하는 쓸쓸함을 사방에서 발견합니다.
  • JJsj 2007/07/17 14:33 #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성인이라면 남과 여를 불문하고 겨드랑이 털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남자는 겨드랑이 털을 맘대로 보이고 다니면서, 유독 여자에게는 그 것을 감추기를 강요한다...정말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자주 들어오면서도 덧글 남기는 것은 거의 처음인듯합니다^^
  • TARI 2007/07/17 16:22 #

    저는 주변의 남자들 겨털을 전부 밀어주었습니다 왁스로 쫘악쫘악 ㅋㅋ
  • bobab 2007/07/17 21:51 #

    solien님/ 그러니까 화가 나잖아요. 화나서 깎기 싫어요.

    파란딸기님/ ^^ 저도 그리 용기가 많지는 않은지라...친근하게 느껴주셔서 고맙네요.

    暗雲姬님/ 아마 차별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차별이라 생각하게 되더라도 어쨌든 개인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니까, 뭐라 할 순 없겠지요. 스스로 선택하기 전에는.

    JJsj님/ 반갑습니다. 덧글 좀 자주 남겨 주세요. T.T


    TARI님/ 그럼 그들은 제모의 괴로움을 알게 되려나요?
  • 룰루랄라 2007/07/17 23:08 #

    우와... 저도 이런 생각 했어요. 전 지금까지 계속 안밀고 버티다가.. 소매 짧은 옷을 못입는게 너무 짜증이 나서 밀어봤는데요... 땀나는 것도 싫고 해서요.. 근데 너무 단순하게 털을 없애면 땀도 안날거라고 생각했지 뭐예요... -_ㅠ 근데 저도 그런 결심하게 된 계기가 여자가 털을 없애지 않으면 지저분하다고 말하는 것을 어디에선가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화장을 안하면 예절이 없는 거라는 말도 들어봤는데... 으흑... 저는 예절도 없이 막나가는 여자인가봐요...;;
  • magnifici 2007/07/18 00:40 #

    저도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는데..
    신랑이 싫어하는 눈치라.. --;;
    주말에 휴가로 놀러가는데.. 할수없이 해야할 판입니다..
    (아 저는 오다가다.. 님 글 읽으면서.. 공감하고 있는 평범 주부입니다.. 이번에 둘째 임신해서.. (지금 7주거든요.. 님글 읽으면서 더더욱 힘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님같으신 어머니들이 있다는것이 자랑스럽고 힘이납니다. 언제나 한수 배우고 갑니다. 꾸벅!
  • nadia 2007/07/18 20:50 #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
    남자가 겨드랑이 털 깎은것은 웃기고 여자가 안깎으면 흉물스럽고 ㅡ 그렇게 머리에 박혀 버렸네요
  • 윤정 2007/07/19 01:18 #

    나이가 들어갈수록 겨드랑이 털도 줄어드네요. 전 그저 그게 서글플 뿐입니다.
    주름이 늘어가는 걸 당연히 여기는 것처럼 없어져 가는 겨드랑이 털에게도 자연스럽게 대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주제랑 상관없는 이야기네요. 홋
  • bobab 2007/07/19 01:23 #

    룰루랄라님/ 화장을 안하면 예절이 없는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절이 없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 바로 예절이 없는 겁니다. 그래도 화장은 나아요. 요즘은 남자도 화장을 하니까요. 그리고 화장은 덧붙이는 거고, 가리는 거지만, 겨드랑이 털은 그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거니까 더 심각한 문제예요.

    magnifici님/ 전에도 덧글 남겨 주셨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힘드시죠? 기운내세요. 둘째 아기도 얼마나 예쁠까요! 제 글이 도움이 된다니 기쁘네요.

    nadia님/ 제가 좀 그런 걸 따지는 편이라...-_-;

    윤정님/ 앗! 그런거예요? 나이 들면 줄어드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저도 그런 것 같네요.
  • 샤띠야 2007/07/19 01:27 #

    그런 캠페인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요. 여자들이여! 우리도 깎지 말자!는... 저희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싫다는 저를 데리고 피부과에 가서 영구제모수술을 해주셨어요. 지금 생각하니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 bobab 2007/07/19 01:31 #

    샤띠야님/ 오호! 그런 캠페인이 있었군요. 그나저나 어머님이 굉장히 세심하시군요.
  • biposh 2007/07/22 02:50 # 삭제

    음...
    이런거에 "여자에게만 강요"라는건 글쎄...어찌되었든 보림, 너의 이런 발언이 날 웃게 하는구나. 귀여운 보림...
    남자도 민소매 입고 팔 벌쩍 들어올리면 거부감나는건 어차피 마찬가지 아닌가? -그건 같은 남자들끼리도 심하게 거부감을 보이던걸
    수염정리 안해서 지저분하고 반감이 이는 남자에게 면도가 좀 필요한걸 가지고 "강요"라고 할수 있을지... (물론, 조니뎁의 수염은 멋지지...범수에게 좀 길러보라 했는데 영 아니더라구...)

    사실 "화장"은 여자에게 때론 전족같다고 느껴질때도 있지...


  • bobab 2007/07/23 23:16 #

    biposh/ 글쎄...겨드랑이 털은 수염이나 화장하고는 좀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되. 수염은 없으면 불편한 것이 아니고, 화장은 덧붙이고 가리는 것이지만, 겨드랑이 털은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보이지 않기를 강요해선 안된다고 생각되거든. 없으면 불편한 것인데, 없애라니 난 싫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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