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내 삶의 바탕

나는 맛있는 음식 먹는 일을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겠지만,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꽤 노력하고 투자한다는 점에서 유별난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건 아마 나와 가까운 지인들 대부분이 인정할 것이다) 나는 외식을 할 때 그냥 적당히 가까운 아무 음식점이나 가는 일을 절대 하지 않는다. 원하는 메뉴가 있으면 아무리 가기 힘들더라도 그 맛이 충분히 검증된 음식점에 찾아가서 먹어야 직성이 풀리고, 그 음식점이 너무 가기 힘들면 다른 메뉴로 바꾸더라도 제대로 한다고 판단되는 음식점으로 간다. 무모한 도전으로 맛없는 외식에 가치 없이 돈을 쓰게 되면 나는 정말 화가 난다. 그래서 어디 여행을 가면 음식점을 제대로 고르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내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삶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옷이나 신발을 사는 일이나 교통수단에 지불하는 돈엔 궁상맞을 정도로 아끼느라 유난을 떨면서, 맛있는 외식을 위해서나 집에서 해먹을 음식재료를 살 때는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나는 언제나 기꺼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 꼭 필요한 것만을 사려고 노력하는 한편 비싸더라도 좋은 것, 맛있는 것을 사려고 하는 것이다.

먹는 일에서 외식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매일 집에서 먹는 밥만큼 내 삶을 이루는 데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일은 없다. 매일 먹는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 나는 굉장히 신경을 쓴다. 어쩌면 좋은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좋은 음식이라고 해서 특이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 흔히 있는 종류의 재료들일 뿐이다. 나는 주로 한살림에서 식재료를 장만하는데, 유기농 채소 위주로 반찬을 만든다.(한살림에서 파는 농산물은 모두 국산이다)

매일 먹는 반찬을 만들어 먹어보니 좋은 재료는 만드는 솜씨가 좀 어설퍼도 재료 자체만으로 훌륭한 맛이 난다는 것을 알겠다. 그리고 좋은 재료란 대게 제철에 나고, 수확한지 얼마 안 되어 싱싱한 식품이라는 것도. 아무리 품종이 뛰어나다고 해도, 싱싱함이 가진 맛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갓 따온 채소는 그 무엇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뛰어난 맛을 가지고 있다.

신선함. 신선함은 생명력이 있는 좋은 먹을거리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 먹을거리의 신선함을 우리 농산물 말고 그 어떤 수입 농산물이 가질 수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면 그것은 위장된 모습일 수밖에 없다. 뿌리에서, 줄기에서 떨어져 나온 지 하루 이틀된 열매와 일주일 된 열매가 어떻게 비슷할 수 있단 말인가.

결혼해서 내 살림을 이루기 전에는 그냥 막연하게 이젠 우리 농업을 무조건 지켜내고자 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농업위주의 사회도 아니니 농업보다는 스위스처럼 기술집약적인 산업 위주로 투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러기 위해선 농업의 진흥과 시장을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가끔 읽었던 신문 어느 구석에서도 우리 농업은 절대 포기해선 안 될 가치라는 글은 없었으니까. 내 생각은 신문 논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참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우리 농업이 그저 우리나라의 여러 산업 중에 하나일 뿐일 수가 있는가. 내가 매일 먹는 음식의 신선함과 건강함의 바탕이고 그건 곧 내 건강의 바탕이다. 내 건강은 내 삶의 바탕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나라 농업이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농업은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해 우선적으로 지켜내야할 가치라는 것이다. 한미 FTA비준은 대운하만큼이나 우리 삶을 비참하게 파헤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by bobab | 2008/02/13 03:15 | 맛있는거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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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파란딸기 at 2008/02/13 07:30
맞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엄마들이 지켜내야할 게 한둘이 아닌 세상입니다. ...
Commented by 구름빵 at 2008/02/13 14:06
옳소~! 같은 한살림 조합원으로서 친근감 느껴요. ㅋ 저도 생협에서 먹거리를 조달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 많아요. 제철 음식을 먹는 즐거움, 소박한 밥상의 건강함, 만들어 먹는 즐거움... 아이가 내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Commented by 흐뭇 at 2008/02/13 14:43
좋은 글 잘읽었어요. 저도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가, 결국 귀농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장일순 선생님께서 유기농을 먹는다는 것은 내 가족만을 위한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온 생명을 살리는 다 같이 사는 길이라고 하셨어요.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을테니까요.

이렇게 풍족하게 먹을 수 있을 날이 언제까지나 계속 될 수 없을테지요. 그 때 가서야 많은 사람들이 참된 먹거리의 소중함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Commented by 시크릿 at 2008/02/13 18:46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한살림 조합원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진답니다. 단순히 유기농산물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조합원'이라는 생각에 더더욱요. '유기농인 걸 어떻게 믿냐' 고 하는 주변사람들을 보면 '(한살림이나 생협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그런 소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깨끗하고 건강에 좋은 식재료를 선별해서 바람직한 조리법으로 음식을 해먹어도 집 밖에서 먹는 다른 음식들로 인해 우리 몸 속의 최소한의 오염지수는 유지된다고 생각해요. ㅎㅎ (그래서 학교 급식에 대한 관심도 아주 많답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후로 어떤 형태로든 학교 급식 개선운동을 하게 될 듯 하네요.)

요즘 신문에 애그플레이션 얘기가 보일 때마다, 유류값인상->수입밀가루값인상->밀가루제품 인상에 관한 기사를 볼 때마다, 도대체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왜 국내 농업 살릴 생각을 안하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먹는 걸 자급자족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다른 걸 생각한다는 건지..
Commented by 비비아나 at 2008/02/14 09:33
저도 아이들 키우다보니 우리 먹거리가 얼마나 소중하게 지켜가야 하는것인지 새삼 그 중요성을 알게 되는것 같아요. 얼마나 뒤늦은 깨달음인지 부끄럽더라구요.
보림님 글을 보며 다시금 우리땅에서 나는 귀한 먹거리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저또한 한살림 조합원으로 기분좋은 공감 ^_^
Commented by bobab at 2008/02/14 22:23
파란딸기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아이를 키우며 느끼고 달라진 눈으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꿔가고 싶네요.

구름빵님/ 네. 정말 아이가 제 삶을 또 새롭게 건강하게 바꿔 놓네요.

흐뭇님/ 귀농이라니 정말 존경스러워요. 저에게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라서요. 그러나 어느때보다 간절히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한번 놀러가도 될까요? 흐뭇님의 진짜 집에.

시크릿님/ 정치하는 사람들은 무슨 책을 읽고 사는 걸까요? 책을 읽기나 할까요? 정말 한심해요.

비비아나님/ 음...한살림 조합원 집합이로군요. ^^ 반가와요.
Commented by 흐뭇 at 2008/02/15 08:22
오늘 글도 잘읽었어요. 글이 좋아요. 먹거리에 대한 의미있는 글들을 자주 써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저는 필력이 약해서, 마음만 가득하지, 막상 심오한 내용은 잘 못쓰겠더라구요.

놀러오시면 언제든지 환영이예요. 저희 동네에도 생협에서 체험행사로 자주 오고 해요.
시골동네에 마음껏 뛰어다니면서 놀게하면 참 좋지요. 이제 날씨도 따뜻해지고 하면 오세요.
빈방도 있으니 주무시고 가세요.
Commented by bobab at 2008/02/16 22:25
흐뭇님/ 뭐 제가 쓴 글의 내용도 심오하진 못한걸요. 제가 밑천이 변변치 않아서...
그나저나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젖먹이 어린 아기가 있는 집에 놀러 가겠다니, 참 뻔뻔하지요? 그러니 아기 백일 지나면 가겠습니다. 그때면 날이 많이 따뜻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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