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16일
어느새

어느 늦가을 오후, 가을 농사도 거두어들인 것이 많아 밭이 텅텅 비어가기 시작하던 어느 날. 여느때처럼 나는 밭일을 하고 준수와 준하는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멀찍이서 아이들끼리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둘이 제법 어울려 논다고 너무 안놀아주고 방치하는 건가 싶어 슬쩍 아이들의 놀이에 끼어들었다. 준수가 무엇을 하는가 살펴 보니 흙으로 강도 만들고 공원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같이 만들려고 옆에 버려진 배춧잎을 가져다가 준수가 만든 곳에 놓으며 "여기도 공원이야. 그리고 이 강은 이렇게 여기로 해서 여기로 흘러가는 거야."하고 흙을 만지며 장단을 맞췄다. 준수는, "왜 거기로 흘러가?" 하고 묻는다. 나는 "응. 여기가 낮으니까. 물은 낮은 데로 흘러." "왜 낮은데로 흘러?"...(아, 끊임없는 왜, 왜, 왜....호기심 많아서 고맙다, 준수야.T.T)
나는 당연히, 모든 것을 준수와 함께 만들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준수는 "여기는 내 공원, 거기는 엄마 공원."하면서 제 공원을 따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순간, 얼마나 당황스럽고 놀라우면서도 기특하고 서운했는지. 늘 내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자란 것일까. 그래도 아직은 친구들끼리 있으려 하지 않고 늘 엄마가 곁에 있기를 바라기에 아이의 이런 변화를 모르고 있었다. 하긴 요즘 부쩍, "나는 차에 있을께."라거나, "엄마만 다녀와. 난 아빠랑 있을래."하는 말을 종종 하긴 했었다.
준수를 키워보며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와 아이가 맞잡은 손은, 언제나 아이가 먼저 놓아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야 진짜로 손을 놓는 일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아이는 손을 놓지 않으려는데 엄마가 먼저 놓아버리면, 그것은 진정 손을 놓은 것이 아닐 것이다. 아이는 아직 엄마의 손을 잡고 싶어하는데, 그 상태가 진정한 분리일까? 엄마의 손을 잡고 싶어하는 아이의 욕망은 아직 아이의 손끝에, 아이의 마음에 남아있다. 그건 성숙에 의한 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이와 맞잡은 손을 절대로 내가 먼저 놓지는 않겠노라 생각했다. 내 품에서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를 자립을 위해서, 사회성을 위해서 떼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 익은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아이가 스스로 떨어져 나갈 순간이 분명히 올 것이라 믿었다.
과연 언제 내품에서 떨어질까 싶었던 준수가, 그토록 내게 매달리던 준수가 이렇게 떨어져 나간다. 물론 아직도 넘어진다거나 하면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하고, 위로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이젠 하루에 한번도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다. 어디든 내 눈길이 닿는 곳에 있으려 하지만, 내 품에 안겨있기를 원하진 않는다. 그래서 내가 부러 안아주고 쓰다듬는다. 언젠간 내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싶어할 날이 오겠지. 서운하지만 뿌듯하다. 어느새 이렇게나 성큼성큼 자라주고 있어서 고맙다, 준수야.

# by | 2009/01/16 02:39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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