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하야, 고마워.

나는 준하를 볼 때마다 "생명"의 의미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잠들었을 때는 점잖은 부처같은 얼굴을 하는 아이가, 깨어있을 때는 어찌나 생기발랄한 장난꾸러기와 애교쟁이의 얼굴을 하는지. 살아있다는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의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게 되는 것이다.

준하는 이제 22개월이다. 요즘엔 말을 뭐든지 따라한다. 아직 발음이 정확하진 않지만, 저렇게 무슨 말이든 따라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말하기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이리라. 아기는 처음엔 아무리 여러 번 들어서 아는 말이라도 제 입밖에 쉽게 내 놓지 않는다. 아주아주 여러번 듣고 이해하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제 입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언어가 "폭발"하는 시점이라는 표현이 생기는 것 같다. 며칠만에 갑자기 구사하는 단어수가 몇 배가 되고, 무슨 말이든 죄 따라하는 것이다. 정확하지 않아서 가끔 못알아 듣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너무나 귀엽다. -_-;

돌이켜보면, 준하는 거의 내 손에서 내려 놓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꼭 예뻐서라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첫째로부터 보호할 필요도 있었고, 내 자신이 애를 안고 지내는 것을 이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다음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첫아이때는 그렇지 않았다. 아기를 안는 일도 행복했지만, 내려놓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기뻤다. 그래서 아기가 잠깐이라도 누워 놀면 얼마나 신이 났는지(그런 일은 거의 없었지만). 소서도 보행기도 없이 준수를 키웠기 때문에 나는 어쨌든 준수가 울 때마다, 안아 달라고 할 때마다 안아주었고, 눕혀 놓더라도 손발 잡고 노래하고 율동하며 쇼를 하고 놀아주었다. 태어나 지금껏 -나도 갓난아기때는 엄마에게 안겨 있었겠지만, 그 기억은 나지 않는 관계로- 내 몸을 누군가에게 1시간이상 밀착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데, 눈을 뜨고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제 멋대로 움직이는 어떤 존재를 품에 안고 있으려니 얼마나 몸이 고되고 그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는지. 그래서 난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잠깐이라도 여건이 되면 아기를 내려놓거나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길 궁리를 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나서는 그렇지 않았다. 내 몸은 이미 누군가를 안고 있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일이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당연하게 느껴졌다. 일년만 지나도 이렇게 아이가 품안에 쏙 들어오는 느낌이 사라질만큼 자란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준하는 보기보다 정말 묵직한 아이인데도(별명이 맷돌이었다) 그 아이를 한 팔에 안고 요리하는 일이 별 일이 아닌 것이 된 것이다.

워낙 많이 안아주어서일까? 아님 원래 성격이 그래서일까? 준하는 엄마 손을 벌써 먼저 놓는다. 위험한 곳이라 내가 잡아주려고 해도, 내 손을 놓고 자기 혼자 가고 싶어할때가 많다. 그래서 어쩌다 가끔 얌전히 내 손을 잡아주면 나는 황홀한 기분이 된다. 아이의 손을 놓지 못해 갑갑해하던 내가, 내손을 잡아주는 아이에게 고마워하게 되다니. 엄마가 된 시간동안 나도 많이 변한 모양이다.

by bobab | 2009/01/17 01:55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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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adia at 2009/01/17 03:08
만두도21개월,언어폭발시기라,참,귀여워요




이제혼자노는시간이많아져서내가막같이놀자같이책읽자,라고조르게되었어요
14키로가되어가니안아도품에쏘옥,들어오지않고.
너무금새아이가커버려서,조금,서운해요.

노트북을만두가또해먹어서.띄어쓰기가안되네요.지금텃밭계획중이에요.
정부에서임대해주는텃밭이있는데,올해는무리일것같으니
작은상자몇개로시작해서
재미있으면내년에도전해보려구요.

너무너무두근두근하답니다.


Commented at 2009/01/17 18:2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obab at 2009/01/23 01:58
오...막상 저는 동영상을 제대로 못봤어요. 그렇게 감동적인가요? 님께서 워낙 감수성이 풍부하시다는 이유도 있겠지요.

둘째는...일단 만든 다음에 설득하셔도 될듯해요. 호호
Commented by 호랑혜정 at 2009/01/21 15:45
오늘도 저와 다르게 아이를 대하는 모습 배우고 갑니다~^^ 임신을 한 순간부터 아이 100일 즈음까지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기만 했어요 밤새 쪽잠자며 아이 젖을 주면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남편과 마주앉아 아침식사도 했구요 낮에도 하나도 안피곤했고 몸도 맘도 최상이었어요
어느날은 남편한테 이랬네요 '우리 몸은 정말 대단해 아이를 낳으면 아이 먹을 젖이 나오는 것처럼 아이를 돌보는 기간 동안은 소비하는 체력에 맞게 에너지가 추가로 생성되나봐~근데 왜 이런 얘기는 아무도 안해준거야? ㅎㅎ' 그러나 지금은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와 있고 바닥난 체력으로 아이가 안아달라는 만큼 안아주지도 않아요 ㅜㅜ /// 보림님~아이 젖 뗄 때 얘기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저희 아이는 17개월 접어들었는데 요즘 유난히 젖을 찾아요 밥 잘 안 먹는 것도 젖 때문인건 아닌가 싶고..젖을 떼는 시점도 아이가 알려줄까요?...
Commented by bobab at 2009/01/23 02:02
음. 글쎄요. 근데 확실한 건, 아이가 밥을 잘 안먹는다는 것이 젖을 떼야할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특히 아이가 젖을 많이 찾을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되구요. 그러니 일단 많이 찾을때는 젖을 더 열심히 주어야죠. 어느 아이나 밥을 잘 안먹는 시기는 지나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근데 그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좋아질테니 너무 염려마시구요. 저도 준하는 아직 수유중인데, 일단 두돌까지는 아무 고민없이 그냥 먹일거구요, 상황봐서 고만 먹여도 되겠다 싶으면 (아이의 상태가) 말로 설득해서 천천히 떼려고 하고 있지요. 아직 설득같은게 먹힐 나이가 아니거든요.
Commented by 웅이 at 2009/01/26 19:51
bobab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준수·준하는 행복한 아이들. 어려서부터 이렇게 사랑을 듬뿍 받다니.
(준수·준하야! 나는 어렸을 때 행복한 기억보다 힘들고 배고팠던 기억이 훨씬 많단다. 커서 엄마에게 너희가 받았던 사랑을 나누어 주렴. 나는 너희 엄마의 글을 보면서 매우 부러워하고 있단다.)

bobab님은 어떻게 해야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지 스스로 공부해 가며, 기록을 남겨 다른 사람까지 깨우치는 훌륭한 어머니.
Commented by bobab at 2009/01/28 02:46
아유, 감사합니다. 웅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남이 해주는 칭찬에 우쭐하지도, 비난에 움추러들지도 말자 하지만, 웅이님 같은 분이 좋게 말씀해주시니 어찌나 기쁜지요. ^-^ 계속 엄마노릇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듣겠습니다.

웅이님이야말로 좋은 분 만나셔서 좋은 아빠가 되실거예요~
Commented by 평온 at 2009/02/10 23:49
윤정이는 언어의 폭발시기가 일찍 와서 진작부터 놀라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요즘들어 뭐든지 제가 하려고 하는게 강해지고 있어요. 펜티나 내복도 저 혼자 입겠다고 하고, 양말도 저 혼자 신고요.
필규는 지금도 내가 입혀주면 좋겠다고 하는데, 두 아이가 이렇게 다르니 그래서 육아가 더 아기자기해지네요.
Commented by bobab at 2009/02/23 03:15
준하도 요즘 뭐든지 "내가, 내가"하고 있어요. 재밌지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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