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30일
남의 아이, 나의 아이.
내 아이를 키워보기 전에,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 내가 어려서부터 나보다 어린 애들을 돌보는 일을 너무 자주, 많이 해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주 얼굴을 보게 되는 친척 중에서도, 부모님의 가까운 친구분들의 아이들 중에서도 나는 대게 가장 나이가 많았다. 친척들이 우리집에 모이는 제사날엔 내 친동생들 세명말고도 일곱명의 사촌동생들까지 모아 놓고 나는 소위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야 했다. 또 나와 일곱살의 터울이 지는 남동생은 내가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개면서 엄마를 도와 돌봤던 것이다. 따라서 내게 아기라는 존재는 별로 새롭지가 않았다. 내 주변엔 어릴적부터 아기가 너무 많았고, 나는 그게 별로 좋지 않았다. 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의 아기를 낳게 되었을 때, 나는 몇가지를 예상했다. 그것은,
'나는 적어도 애 안고 돌보는 일은 능숙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기를 과연 얼마나 좋아할 수 있을까.'
였다.
나의 두가지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일단 나는 누군가를 도와 남의 아기를 돌보는 일과 '내 아기'를 돌보는 일은 완연히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아기를 낳은 바로 그 다음 날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여러번 아기를 안아본 경험덕에 아기를 안는 폼이 안정적인 편이긴 했다. 그러나 안기만 하면 뭐하는가. 먹여야지, 재워야지, 씻겨야지, 기저귀 갈아야지. 무엇보다 언제나 울음일뿐인 아기의 의사를 알아채서 그에 맞게 돌봐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오로지 내 책임인 일이라는 것은 직접 겪어보기 전엔 절대로, 절대로 그 느낌을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다행히 빗나간 두번째 예상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는 아기가 너무 예뻤다. 낳은 직후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오늘도, 지금도, 나는 내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록 행복하다.
공원에서, 도서관에서, 목욕탕에서, 쇼핑센터에서 나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는 수 많은 시선과 마주친다. 나도 다시 한번 내 아이들을 바라본다. 내겐 말로 정확히 다 표현할 수도 없을만큼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하지만 내 아이들이 남들 눈에도 내가 보는 모습과 같이 보일리 없다는 걸 안다. 내 아이들도 남들에겐 그저 평범한 남의 아이들일 뿐이다.
그 시선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해도, 나는 기쁘다.
나는 이제, 내가 바라보는 '남의 아이'가, 누군가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리를 걸어가는 저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누군가에겐 그토록 소중한 '나의 아이'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것을, 아기를 낳아 키워보고 나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그 모든 생명이 어미의 품에서 자라고 태어났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엄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정성으로 자랐을 것을 생각하면 모든 사람이 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남의 아이도 예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건 아마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일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 내가 어려서부터 나보다 어린 애들을 돌보는 일을 너무 자주, 많이 해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주 얼굴을 보게 되는 친척 중에서도, 부모님의 가까운 친구분들의 아이들 중에서도 나는 대게 가장 나이가 많았다. 친척들이 우리집에 모이는 제사날엔 내 친동생들 세명말고도 일곱명의 사촌동생들까지 모아 놓고 나는 소위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야 했다. 또 나와 일곱살의 터울이 지는 남동생은 내가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개면서 엄마를 도와 돌봤던 것이다. 따라서 내게 아기라는 존재는 별로 새롭지가 않았다. 내 주변엔 어릴적부터 아기가 너무 많았고, 나는 그게 별로 좋지 않았다. 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의 아기를 낳게 되었을 때, 나는 몇가지를 예상했다. 그것은,
'나는 적어도 애 안고 돌보는 일은 능숙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기를 과연 얼마나 좋아할 수 있을까.'
였다.
나의 두가지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일단 나는 누군가를 도와 남의 아기를 돌보는 일과 '내 아기'를 돌보는 일은 완연히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아기를 낳은 바로 그 다음 날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여러번 아기를 안아본 경험덕에 아기를 안는 폼이 안정적인 편이긴 했다. 그러나 안기만 하면 뭐하는가. 먹여야지, 재워야지, 씻겨야지, 기저귀 갈아야지. 무엇보다 언제나 울음일뿐인 아기의 의사를 알아채서 그에 맞게 돌봐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오로지 내 책임인 일이라는 것은 직접 겪어보기 전엔 절대로, 절대로 그 느낌을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다행히 빗나간 두번째 예상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는 아기가 너무 예뻤다. 낳은 직후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오늘도, 지금도, 나는 내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록 행복하다.
공원에서, 도서관에서, 목욕탕에서, 쇼핑센터에서 나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는 수 많은 시선과 마주친다. 나도 다시 한번 내 아이들을 바라본다. 내겐 말로 정확히 다 표현할 수도 없을만큼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하지만 내 아이들이 남들 눈에도 내가 보는 모습과 같이 보일리 없다는 걸 안다. 내 아이들도 남들에겐 그저 평범한 남의 아이들일 뿐이다.
그 시선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해도, 나는 기쁘다.
나는 이제, 내가 바라보는 '남의 아이'가, 누군가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리를 걸어가는 저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누군가에겐 그토록 소중한 '나의 아이'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것을, 아기를 낳아 키워보고 나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그 모든 생명이 어미의 품에서 자라고 태어났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엄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정성으로 자랐을 것을 생각하면 모든 사람이 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남의 아이도 예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건 아마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일 것이다.

# by | 2009/01/30 02:33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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