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아이, 나의 아이.

내 아이를 키워보기 전에,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 내가 어려서부터 나보다 어린 애들을 돌보는 일을 너무 자주, 많이 해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주 얼굴을 보게 되는 친척 중에서도, 부모님의 가까운 친구분들의 아이들 중에서도 나는 대게 가장 나이가 많았다. 친척들이 우리집에 모이는 제사날엔 내 친동생들 세명말고도 일곱명의 사촌동생들까지 모아 놓고 나는 소위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야 했다. 또 나와 일곱살의 터울이 지는 남동생은 내가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개면서 엄마를 도와 돌봤던 것이다. 따라서 내게 아기라는 존재는 별로 새롭지가 않았다. 내 주변엔 어릴적부터 아기가 너무 많았고, 나는 그게 별로 좋지 않았다. 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의 아기를 낳게 되었을 때, 나는 몇가지를 예상했다. 그것은,
'나는 적어도 애 안고 돌보는 일은 능숙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기를 과연 얼마나 좋아할 수 있을까.'
였다.

나의 두가지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일단 나는 누군가를 도와 남의 아기를 돌보는 일과 '내 아기'를 돌보는 일은 완연히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아기를 낳은 바로 그 다음 날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여러번 아기를 안아본 경험덕에 아기를 안는 폼이 안정적인 편이긴 했다. 그러나 안기만 하면 뭐하는가. 먹여야지, 재워야지, 씻겨야지, 기저귀 갈아야지. 무엇보다 언제나 울음일뿐인 아기의 의사를 알아채서 그에 맞게 돌봐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오로지 내 책임인 일이라는 것은 직접 겪어보기 전엔 절대로, 절대로 그 느낌을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다행히 빗나간 두번째 예상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는 아기가 너무 예뻤다. 낳은 직후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오늘도, 지금도, 나는 내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록 행복하다.

공원에서, 도서관에서, 목욕탕에서, 쇼핑센터에서 나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는 수 많은 시선과 마주친다. 나도 다시 한번 내 아이들을 바라본다. 내겐 말로 정확히 다 표현할 수도 없을만큼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하지만 내 아이들이 남들 눈에도 내가 보는 모습과 같이 보일리 없다는 걸 안다. 내 아이들도 남들에겐 그저 평범한 남의 아이들일 뿐이다.

그 시선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해도, 나는 기쁘다.
나는 이제, 내가 바라보는 '남의 아이'가, 누군가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리를 걸어가는 저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누군가에겐 그토록 소중한 '나의 아이'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것을, 아기를 낳아 키워보고 나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그 모든 생명이 어미의 품에서 자라고 태어났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엄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정성으로 자랐을 것을 생각하면 모든 사람이 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남의 아이도 예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건 아마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일 것이다.

by bobab | 2009/01/30 02:33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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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룰루랄라 at 2009/01/30 03:22
오늘 뉴스에서 들은건데요. 어느 나라에서 아기 울음 번역기가 나왔대요 ㅎㅎ 배고픔 졸림 이런 식으로 몇 가지 유형을 정해서 울 때 갖다대면 해석이 뜬다고 하더라구요 ㅋㅋ 아나운서가 초보 부모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것 같다고 하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ㅜㅠ 글을 읽다 그 기억이 다시 떠올라서 덧글남겨봅니다^^
Commented by bobab at 2009/02/02 00:09
저도 아기 울음을 분석한 내용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근데 막상 아기가 울면 그런 생각은 잘 나지 않지요.^^ 근데 정말 그런 도구를 쓰는 사람도 있을까요? 그런 것까지 기계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하다니 참 희한한 세상입니다.
Commented by 姉上 at 2009/01/30 09:37
그러셨군요... 지금 여동생이 임신중이라서 가끔 와보는데...저는 사실 그런 이유로 (+... 좀 복잡합니다. 사실 석사 전공도 그쪽하고 관련된거긴 하거든요) 결혼을 안했기 떄문에... ( 결혼하고도 아이없이 사는 부부들도 많이 봤지만 저는 그런 면에서 생각이 일치하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고 제 의견만 내세울수도없고... ) 다른 분들한테도 몇 번 들은 내용이지만 보밥님이 말씀하시니까 좀더 와닿는 느낌입니다. / ....오래전부터 포스팅은 봤지만 덧글은 처음 올리네요.
Commented by bobab at 2009/02/02 00:15
반갑습니다. 아이를 별로 원치 않으셔서 결혼을 안하셨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럴 수 있지요. 세상에 어디 한가지 빛깔의 행복만 존재하겠습니까.
Commented at 2009/01/30 10: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obab at 2009/02/02 00:16
네. 학교교육이 우리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답니다.
Commented by 인아 at 2009/01/31 23:20
전 또한 아기를 낳고 키워보기 전까지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단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길거리 아기만 봐도 저 아기 또한 내 아기처럼 사랑받고 자라고 있겠구나 싶어 한 번 더 눈길이 가고 모든 아기는 사랑받아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보면 안쓰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Commented by bobab at 2009/02/02 00:17
네. 저도 남의 일이 마냥 남의 일같지 않아 졌지요.
Commented by 호랑혜정 at 2009/02/04 23:45
전 아직 남의 아이가 사랑스럽진 않지만.. 제 아이를 생각해서 밤 12시에도 공놀이를 하는 윗집 아이에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참고 있어요 ㅜㅜ 요즘 짜증 1순위가 윗집 소음이에요 이틀이 멀다하고 어른과 아이가 세간을 때려부술 정도로 싸움을 하고 괴성을 지르고 두드리고 쿵쿵 거리는데 밤낮이 없어요.. 그 아이가 너무 밉고 안됐기도 하고 그러네요..현명한 보림님~해결책 있을까요? ^^
Commented by bobab at 2009/02/05 00:01
오...그건 분명히 항의를 해야하는 거라고 보는데요. 밤 12시는 너무 한걸요.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이웃을 위해 지켜야할 예의가 무엇인지는 가르칠 필요가 있지요. 근데 말씀을 하셨는데도 소용이 없나요?
Commented by 호랑혜정 at 2009/02/07 12:04
짐작은 갔지만.. 그 엄마 까칠하더라구요 자기네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오히려 신경질만 듣고 왔어요 제가 과민해서 멀리 다른집 소음을 윗집으로 단정지은게 아닐까 했는데..또 싸우는 소리에 올라갔더니 아이가 소리지르며 현관을 박차고 나오더라구요.. 어느날도 11시 넘어 한바탕하길래 남편한테 제발 윗집에 어필해달라고 했더니 왠일로 벌떡 일어나 나가는거에요 남한테 싫은 소리 단한마디도 못하는 남편이요 얼마후 대걸레를 찾아들고 들어와 천정을 마구 두드리더군요 ㅜㅜ 오가다가 윗집 아이를 만나게 되면 잘 설명해주고 최소한 우리한테 피해가 된다는 건 표현해볼 생각인데 그아이 엄마랑은 한판 붙고 싶은 심정이에요/// 보림님 즐거운 주말요~~^^
Commented by bobab at 2009/02/23 03:06
답이 늦어 죄송해요. 저런... 살다보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 마련인가 봐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요.
Commented by 평온 at 2009/02/10 23:44
엄마가 되고 나서, 세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아이들 역시 누군가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생생하게 실감되더군요. 아이와 함께 가는 여자들이 다 친구로 보이고, 눈빛으로도 서로의 입장을 전하고 이해받는 느낌이 들더군요. 참 멋진 일이지요.
Commented by bobab at 2009/02/23 03:09
제가 남을 이해하고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보다, 아이를 키워본 어머니들의 배려를 더 많이 받아왔던 것 같아요. 이젠 앞으로 그런 배려를 돌려주며 살아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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