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4일
긴머리 소년, 준수

요즘 준수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다들 다시 한 번 쳐다보며 묻는다. “너 여자니, 남자니?”
그도 그럴 것이 요즈음의 긴머리 소년 준수는 옷차림은 남자 아이인데, 머리 모양새는 여자아이 같고, 얼굴은 아리송하게 생겼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왜 애 머리를 이렇게 길러 줘요?”
무슨 말씀? 머리를 기르고 자르지 않는 것은 순전히 준수의 의사이다. 나는 외식 메뉴를 정할 때조차도 아이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묻는데, 하물며 본인의 머리모양을 결정하는 일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오히려 아이의 머리모양을 엄마인 내가 결정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물론 준수에게 컷트를 권유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승환의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나 내 머리 손질을 위해서 동네 미용실에 갔을 때, 준수에게 머리 좀 자르자고 말해보긴 했었다. 날은 점점 더워지는데, 놀다 보면 금세 땀 범벅이 되는 아이들이 아닌가. 그러나 그때마다 준수는 완강히 싫다고 말했다. 그래?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오늘의 긴머리 소년 준수가 되었다.
참 신기하다. 아이들은 이렇게 어느새 저마다의 빛깔을 갖고 자란다. 그저 타고 태어난 생김새나 성격뿐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즐기는 것, 보기 좋다고 여기는 것 까지 저절로 이 세상 어느 누구와도 다른 독특한 취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가르치지 않아도- 오히려 그래서 아무하고도 닮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준수의 엄마로서 가지는 최대의 특권이자 의무는, 준수의 그런 자기만의 취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 취향이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만 아니라면,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한들 취향이 무시되어야 할 어떤 이유가 있단 말인가? 아이가 소중하듯, 아이의 의견도 내겐 소중한 것이다. 아이의 의견도 결국 내 아이를 이루는 부분이 아니던가. 남들에겐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내 아이가 그걸 좋아하고 바란다면 그걸로 족하다.
나는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삶의 어느 순간에서든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과정과 경험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선택이 실현되는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이는 내 몸에서 생겨서 나왔지만, 내 몸을 빌려 나온 또 다른 존재라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세겨지는 요즘이다.
# by | 2009/07/24 02:06 | 아이키우기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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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몸을 빌려 나온 또 다른 존재.... 멋있는글 읽고 가요.^^
저도 남편을 들들 볶는 편이랍니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게 제일 어려워요. ㅋㅋ. 내년엔 어디로 가시나요? 저도 님의 생활이 궁금해집니다. 반갑습니다.
특히 책 추천 목록 고마워요. 라마즈 클래스류가 100불이나 해서 그거 대신 책과 도서관 dvd로 자체 학습 하려고 생각 중이거든요. 얼마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몇 권 샀어요. 한달 뒤 책이 올텐데 벌써 많이 기다려지네요. 언니 목록 중에서 황금빛 똥, 아들 제대로, 박문일씨의 출산서, 신의진씨의 책을 주문했어요. 중고서점 이용했더니 '아들 제대로 키우기'도 있더라구요! 기타 모유수유, 조산사의 분만서적, 베이비위스퍼(하도 난리라 사봤음), 신생아 발육정보 등 5권 포함해 9권이 올 예정이랍니다. 미국 오니 한글책이 더 좋은 거 있죠. 요샌 모유수유 영문책 한권 읽고 뿌듯해하는 중이랍니다. 아기 관련 서적 아니었으면 영문서 한권 독파하는 거 못했을거에요. :)
아 글이 계속 길어져요. 무슨 할말이 많은지. 며칠 전 제가 남편에게 '둘째 낳을지 안낳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애 낳으면 나 조산원 갈꺼야'라고 했더니 눈이 둥그레져서 놀라더군요. 후후. 전 인권분만 책도 안읽었고 아직은 주장이 강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걸 찾는 게 제일 좋은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출산할 병원은 모자동실인데(분만전부터 분만후까지 1인실에 그냥 계속 머무는 형식이에요.) 요즘 여기저기 글을 보니 한국은 신생아실이냐 모자동실이냐부터 갈라지더라구요. 의료보험이 형편없는 나라에서 애를 낳으려니 속쓰린 점도 많지만 우연히 '당연한 모자동실 병원'에서 낳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에 있었다면 무지한 상태에서 공부를 여차여차 해서 옵션을 찾아 무언가를 결정해야했겠죠.
출국 준비 잘하시고 애기들 소식과 언니 소식, 좋은 글로 종종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