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12일
런던에 도착하다
드디어 런던에 왔다. 사실 9일에 도착했지만, 너무 피곤하고 바빠 글 한 줄 적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다. 런던행 비행기를 타기 며칠 전부터 매일 밤을 새다 시피 하면서 짐을 싸고 정리를 했다. 출국 전날은 그야말로 일분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짐을 싸고 집을 정리했는데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집안은 아름다운 가게에 보낼 상자 무더기와, 버릴 물건 더미들, 남겨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지만 전혀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의 더미가 발에 밟히도록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마땅히 내가 정리해야 할 일들인데도 그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집을 떠났다니. 몸도 힘들지만 맘도 편치가 않다.
게다가 동경으로 2시간 30분의 비행과 다시 동경에서 런던으로의 12시간30분에 걸친 비행시간 동안 에너지 펄펄 넘치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어깨도 편히 펴지 못하고 다리도 쭉 뻗지 못하는 일반석에서 지낸다는 건 정말 고달픈 일이었다. (그때만큼은 비즈니스석이 부러웠다) 준수와 준하는 긴 비행시간을 그런대로 잘 견디며 차분하게 좌석에서만 지냈지만 그래도 비행기가 워낙 만석이고 체크인을 늦게 해서 승환과 준수가 나와 준하와 한참 떨어져 앉아 있다가, 준하가 아빠 있는 쪽으로 가자고 해서 결국 준하는 좌석 값을 내고도 거의 내내 나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
또 일본항공은 왜 이런지. 전에는 꽤 고급스런 서비스를 했던 것 같은데, 완전히 다른 항공사가 된 것 같았다. 비행기에서의 식사시간이 시차적응을 고려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은 알지만, 출발한 나라 시간으로 낮 12시에 탄 승객들에게 1시쯤 식사를 주고는 저녁 7시까지 아무것도 주지 않고 굶긴다는 것은 좀 너무한 처사 아닌가? 싸가지고 간 떡과 과일이 아니었으면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 때문에 정말 곤란할 뻔 했다. 7시에 항공사에서 야채빵 한 개씩을 던져주어서 주린 배를 달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12시간의 비행동안 고작 식사가 두 끼 뿐인가? 하고. 그러나 한 2시간쯤 더 있다가 스파게티로 된 식사를 주었다. 비록 아주 적은 양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쩐지 표가 싸더라니, 서비스가 심히 박하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서도 비행기 꼬리 끝에 타고 있던 우리는 제일 늦게 출국 심사대쪽으로 갔다. 하지만 유모차 두 대에 아이들을 싣고 오는 우리를 본 공항 직원이 우리를 길게 늘어선 줄에 설 필요 없이 직행으로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서 굉장히 일찍, 편하게 공항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 노고를 인정받아서 편의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를 받는 일로 더 많이 채워진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예약해 두었던, 한국인이 운영하는-알고 보니 본업은 신문사 기자이고 부업으로 가끔 택시일을 하는 분이었다- 미니 캡을 타고 정해 놓은 숙소인 Golders Green의 한 아파트로 왔다. 영국사랑의 벼룩시장 사이트를 통해서 알게 된 곳이다. 침실 세 개짜리 아파트를 리셉션룸(거실)까지 방으로 사용하여 네 개의 방으로 나누어 임대하는 곳인데 우리는 리셉션 룸-영국집의 리셉션 룸은 우리나라집의 거실과는 달리 방처럼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인 가장 큰 방에 머물게 되었다. 더블 사이즈의 침대가 두 개 있고, 쇼파도 있는 꽤 넓은 방이다. 부엌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써야하긴 하지만, 정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출국 준비의 과정을 소상히 기록하고, 블로그에도 글을 쓰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그 과정이 제일 궁금했기 때문이다. 근데 막상 닥쳐보니, 그런 과정에 대해 다른 사람이 쓴 글이 별로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할 일은 많고, 진척은 되지 않고, 마음은 조급했다. 해결해야 할 일은 기차처럼 쭉 연결되어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오는데 정말이지 그럴 때는 글을 쓴다는 일은 사치스런 일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도착하자마자 임시로 지낼 방을 구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호텔이나 민박은 너무 비싸서(하루 최소 40파운드, 우리 돈으로 8만원) 지내기가 힘들었고, 여럿이서 사는 아파트에서 빌려주는 방들은 우리 같이 네 명이나 되는 가족에게 방을 빌려주기를 거부했다. 아주 여러군데 전화해서 간신히 빌린 곳이 지금 우리가 머무는 곳이다.
생각보다 많이 지저분하지만, 이렇게 바람을 막고 비를 피해 지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한국에서 예약금으로 400파운드나 송금하고 왔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방이었다면 어쩔 뻔 했는가.
고마운 집이긴 하지만, 얼른 우리 집을 구해서 이사 가고 싶다. 짐더미들은 가방 위에서 춤추고 있고, 내 마음도 구석구석 먼지 낀 부엌에서 겉돌고 있다.
# by | 2009/09/12 05:45 | 건강하게 살아가기 | 트랙백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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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여행이 아니면 외국행에는 여유도 낭만도 없는 거군요.
그래도 공항에서의 일 보면서, 여기와는 조금 다를 앞으로의 생활에 기대가 됩니다.
너무 서둘지 마시고 천천히 차곡차곡 일 처리하세요.
집 구하실때, 꼭 직접가서 주변환경까지 보시고 결정하세요..여기는 도로 하나 사이로 살기 험악한곳과 살기 좋은곳이 구분되는경우가 많아서요.
정보 고마와요. 덕분에 여름옷을 안가져 왔지요.^^
짐 정리하느라 쉬지도 못하고 새벽 비행기 타고 가서 걱정 많이 했는데
그래도 아이들도 모두 건강히 탈 없이 무사히 도착해서 이렇게 글까지 올리다니
그만하면 성공적인 출발이야. 진심으로 첫 출발을 축하한다. ^^
그보다 훨씬 나쁠 수 있는 상황이 얼마든지 있었을테니 너도 스스로에 대한 자축과 격려를 아낌없이 하길.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차근히 닥친 일들 처리하길 바래.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공공시설의 이용에 있어 아이를 가진 가족들을 우대하는 것 같더라. 우리도 연수데리고 프랑스 다닐 때 참 많은 혜택을 봤던 것 같아. 특히 줄서기! 아이가진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이니 어디가든 주저없이 권리를 사용하길. 외국 다니면서 우리나라 선진국 되기 참 멀었다는 생각 많이 드는 부분 중 하나지.
정착하기까지 고생 많을텐데 보림이는 힘차고 현명히 잘 헤쳐가리라 믿는다. 무엇보다도 몸이 많이 지쳐있을테니 처음부터 너무 아끼려고만 하지 말고 쓸 때는 쓰고. (웬 잔소리 ㅋㅋ)
네가 준 베이커리 재료 넘 고맙다. 바쁜 와중에 박스 하나 더 챙기고 주소 적는 것도 일이었을텐데... 맛난 빵 많이 만들어 먹을께. 네 생각하면서.
연수가 준수 준하 영국 갔다고 서운해한다. 이제 당분간 못본다고.
한 번 더 보고갔으면 좀 덜 서운했을텐데.
너희 가족의 건강과 멋진 출발을 기원한다. 보림이 가족 화이팅!!!
보낸 게 잘 도착했다니 정말 다행. 주소도 제대로 안쓰고 보내다니 내가 정말 정신이 없었다 싶지 뭐냐. -_-;
암튼 응원 고마와. 너네 가족도 모두 건강하길!
글 속에서... 얼마나 그동안 분주하시고 힘셨는지 느껴지네요..
힘내시고... 영국에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길 바래요~
얼른 좋은 안식처도 구하시길 바래요.
외국은 어디던지 아이들과 동행하면 심사를 바로 받을 수 있게 해주는것 같아요. 작년에 미국에 갔을때도 바로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JAL의 기내식은...많이 불만스러우시겠어요. 그런데 저희도 12시간동안 식사는 2번밖에 안나왔던것 같네요. (귀국길엔 빵하나 더 주긴 했지만요 ^^;;) 저흰 윤하가 유아식을 따로 신청했는데 많이 먹지 않아서(원래 식사시간땐 윤하가 자고있었거든요.) 간식삼아 먹기도 했었어요..어른들꺼보다 더 맛있었다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게 부럽네.
내일 둘째 나온다. 나도 살짝 비슷한 기분이 들긴 하네.. ㅎ
승환씨, 보림, 준수, 준하 모두 화이팅.
그리고 그때 뵈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그때 저도 뵙고 싶어요 !